사실상 무효가 된 휴전, 이스라엘 레바논 남부 초토화
미국과 이스라엘이 2월 28일 이란 공격을 개시한 이후 레바논 또한 전쟁에 휘말렸다. 3월 2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는 이란 공격과 지도부 제거에 대한 보복, 그리고 2024년 11월 휴전 이후 거의 매일 계속된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에 대한 항의로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가했다. 이를 빌미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에 대한 전면 공격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헤즈볼라의 거점인 레바논 남부와 수도 베이루트 남부뿐만 아니라 레바논 전역을 겨냥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4월 16일 10일 동안의 휴전에 합의했고, 4월 23일에는 이란과의 종전 회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양측 만남을 주선한 트럼프 대통령이 3주 동안의 추가 휴전을 발표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 대화와 휴전 합의의 초점이 헤즈볼라 무장해제에 맞춰지면서 헤즈볼라는 휴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물론 두 번째 휴전 후에도 이스라엘은 계속 휴전을 위반하며 헤즈볼라를 공격했고 헤즈볼라 또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자국을 위협하는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은 휴전 합의와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휴전은 사실상 무효화 상태고 인명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레바논 보건부는 4월 25일 현재 사망자가 2,509명이고 부상자는 7,755명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엔 등 국제기구들은 레바논 이주민이 120만명 이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리타니강 이남의 레바논 남부를 점령하고 지상군을 배치한 이스라엘은 휴전 후에도 지상군 철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국경에서 레바논 남부 10킬로미터 지역까지를 “안보 구역(security zone)”으로 설정해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이곳에 있는 55개 마을 주민의 귀환을 금지하는 “노란선(yellow line)”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이것이 가자지구 모델을 적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58%를 차지하는 동부 지역을 군사 지역으로 설정하고 ’노란선‘을 설치해 주민 귀환을 금지하고 있다. 노란선 안쪽을 완전히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휴전 이후 이곳의 수백 채 건물을 파괴하고 접근하는 주민들을 살해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레바논 남부 수십 개 마을을 초토화했다. CNN은 25일 위성과 영상 이미지 분석을 통해 이스라엘군이 마을들을 파괴한 상황을 보도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빈트 주베일의 경우 4월 16일 중심 지역 대부분이 파괴돼 회색 잔해로 바뀐 상태였고 4월 23일에는 나머지 건물들마저 모두 사라지고 흙빛으로 평탄화된 모습이었다.
CNN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면전이 시작된 3월 2일부터 10일 동안 이스라엘군이 22개 마을에서 523채의 건물을 파괴했는데 여기에는 주택뿐만 아니라 모스크, 약국, 카페, 자동차 수리점 등 민간 시설들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공습으로 파괴된 지역에 진입해 불도저와 굴착기로 철거 작업을 진행했고 첫 번째 휴전이 합의된 4월 16일 이후에도 작업을 계속했다.
레바논 정부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군사 구역 설정 결정에 대해 주권을 해치고 휴전 합의를 위반하는 행위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것이 일시적인 군사 구역이 아닌 영구 점령으로 굳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상군을 투입해 레바논 남부를 점령하고 주민들을 모두 쫓아낸 이스라엘의 표면상 주장은 헤즈볼라의 거점인 남부가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 점령해 헤즈볼라 기반 기설을 모두 파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와 언론은 이것이 레바논 남부를 영구 장악하려는 이스라엘의 계획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레바논 정부에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압박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 또한 원칙적으로 이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는 한 헤즈볼라는 무장해제가 불가능하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일부를 점령하고 있던 1980년 초반에 창설됐고 지속적인 저항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고 18년 동안의 점령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그후 레바논 남부와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대에서 무력 충돌은 계속됐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영국 등 많은 국가가 헤즈볼라를 친이란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지만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정당 중 하나로 의회 128개 의석 중 헤즈볼라 의석과 친 헤즈볼라 의석을 합한 수는 62석에 달한다. 특히 레바논 남부 주민들에게 헤즈볼라는 단순한 무장세력이 아니다. 이스라엘 공격으로부터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정부를 대신해 교육, 보건 등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치단체이자 사회단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헤즈볼라에게 있어서 레바논 남부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저항 정신에 따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한, 그리고 레바논 남부에 배치한 지상군을 철수시키지 않는 한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도 전쟁 종식도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고 오히려 레바논 남부 영구 점령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야욕, “대이스라엘” 실현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점령은 헤즈볼라 공격에 대한 반격이 아니라 오히려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이것이 최근 이스라엘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 구상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대이스라엘 구상은 이집트의 나일강에서 이라크의 유프라테스강까지를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약속한 성서의 내용에 근거한 것으로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물론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의 일부가 포함된다.
이는 주로 이스라엘 극우 국민과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것이었지만 작년 8월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언급하면서 한차례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이스라엘의 한 뉴스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대이스라엘에 대한 비전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 “무조건(absolutely)”라고 답했다. 또한 대이스라엘 비전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냐는 질문에도 “아주 많이(very much)”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중동 국가들의 분노를 불렀고 31개 아랍 및 이슬람 국가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이는 국제법 규정과 안정적 국제관계의 근간에 대한 중대하고 위험한 위반”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다시 한번 대이스라엘이 논란이 된 건 올해 2월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인 마이크 헉카비가 미국 우익 인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 지배하는 걸 지지하는지 질문을 받은 그는 “(이스라엘이) 모든 지역을 가진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해 중동 지역 국가들은 물론 미국 우방국들의 분노를 샀다. 이후 이스라엘 우익 정치인들은 잇달아 대이스라엘 구상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면서 지지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정착촌을 대폭 늘리고 가자지구의 약 60%를 군사 구역으로 설정해 놓은 것, 그리고 2024년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 몰락 후엔 1967년 이래 국제법을 어기고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넘어서 점령 지역을 넓힌 것, 그리고 이란 전쟁 이후 레바논 남부를 다시 점령한 것 모두가 대이스라엘 구상의 일부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슬로 회담의 이스라엘측 협상 대표였고 현재 미국중동프로젝트의 회장인 다이엘 레비는 4월 13일 <가디안>에 기고한 글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2기를 그의 최종 목표인 대이스라엘에 도달한 기회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넘어 시리아에서 점령 지역을 확장한 것과 레바논 남부를 점령한 것 등을 예로 들었다.
나아가 대이스라엘이 단지 영토 확장만이 아니라 지역 패권을 노리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구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영토 점령과 통제는 당연하고 이스라엘과 네타냐후 총리가 더 큰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란 공격 며칠 전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는 안보 인사들이 이란 정권이 전복되고 약화되면 이스라엘이 “지배적인 지역 강국” 위치를 수립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한 점에 주목했다. 또한 3월 12일 대국민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전쟁을 이스라엘이 “지역 강대국(regional superpower)”을 넘어 “일부 영역에서 세계 강대국(global power)”이 되는 것과 관련지어 언급한 점도 지적했다.
이런 분석과 주장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레바논 남부 점령은 대이스라엘 구상과 연결되고 나아가 이스라엘이 지역 패권국이 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인 것이다.
기만적인 “위협”과 “자위권” 프레임
이스라엘의 이런 구상에 토대를 제공해 주는 것이 “위협”과 “자위권” 프레임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수십 년 동안 세계 여론과 언론을 호도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동원해 온 프레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이를 통해 자국이 적대 세력에 둘러싸여 있고 일상이 위협받고 있음을 세계에 홍보해 왔다.
이스라엘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 대다수, 특히 유대계는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왜곡이자 전 세계를 기만하는 것이다. 진실은 이스라엘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공격과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들로 팔레스타인은 물론 주변국들이 위협받고 주민들은 생명의 손실과 삶의 파괴를 지속적으로 겪고 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과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헤즈볼라 또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점령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 또한 이스라엘의 주장이 왜곡이고 기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두 세력과 이스라엘 간 지속적인 무력 분쟁이 있었지만 전력의 비대칭을 이용해 이스라엘은 매번 입은 피해를 수십 배, 수천 배로 갚아주곤 했다. 20223년 10월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과 3월 2일 이후 재개된 레바논 전쟁이 이를 잘 말해준다.
지역 강대국인 이란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동참으로 이제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란이 더는 위협이 아닌 건 이스라엘이 작년에도 올해도 미국과 함께 이란을 선제공격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월 28일 시작된 전쟁 이후 발생한 인명 피해를 통해서도 이런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알자지라>가 각국 보건부의 통계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4월 21일 현재 이란의 사망자는 3,375명이고 부상자는 26,500명 이상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의 사망자는 26명이고 부상자는 7,693명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위협이 되는지는 사상자 집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으로 레바논과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공격에 대해서는 휴전과 상관없이 계속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 ‘위협’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라는 주장이다.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 대한 점령, 민간인과 민간 시설 공격, 초토화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레바논 남부 점령을 고착화하려는 시도고 대이스라엘 구상 실현의 일환이라는 의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이스라엘의 태도와 행동은 레바논에 위협이 되는 것은 물론 지역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이스라엘은 국가 수립 이후 일관되게 주변국과 저항 세력 공격을 통해 자국의 존재감과 힘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이권 외에 지역의 안보와 평화, 국제법 준수 등 국제사회의 상식과 규범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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