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착 상태인 종전 협상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을 꽉 채우게 됐다. 첫해에 격렬했던 전쟁은 그다음 해부터는 거의 소모전 양상으로 변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중재로 2025년 8월 이후 본격적인 종전 논의가 시작됐지만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올해 1월 말부터 세 차례 진행된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3자의 직접 협상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영토, 안전 보장 문제와 관련해 양측의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쟁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18.5%를 점령하고 있다. 러시아의 최종 목표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에 달하는 동부 네 개 주를 모두 손에 넣는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적어도 군사적, 산업적으로 중요한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안보 보장과 관련해서는 우크라이나와 미국 간에도 확실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유럽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무력 지원과 다국적군 파견 구상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안보 보장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종전 합의 또한 어렵다.
종전 협상이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져있으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적어도 전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한 상태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는 전쟁으로 인한 손실을 감당할 수 없고 더는 얻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전쟁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전쟁 초반 예상보다 강하지 않았던 러시아군의 전력을 오판하고 승리를 장담하면서 장기전을 결정한 건 큰 실수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러시아군은 예상보다 강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받았지만 내내 우위를 점했다. 또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와의 직접 대결을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홀로 러시아를 상대하는 건 처음부터 패배의 결말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4년의 전쟁을 돌이켜보면 결국 우크라이나는 적극적인 종전 노력이 아닌 전쟁 지속을 선택해 많은 것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회 경제 손실 심각
우크라이나가 입은 가장 큰 피해는 사회 파괴다. 물리적 피해는 물론 많은 난민과 국내 이주민 발생으로 가족과 공동체가 해체됐다. 유엔에 따르면 2월 초 기준으로 우크라이나의 국내 이주민은 약 370만 명이고 유럽 국가들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은 500만 명이 넘는다. 사회 시설 파괴도 극심해 세계은행, EU, 유엔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는 2024년 말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을 5,240억 달러(약 770조원)로 추산했다.
가장 큰 손실은 인명 피해다. 유엔에 따르면 2026년 1월 31일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는 15,172명이고 부상자는 41,378명이었다. 군의 인명 피해는 막대하다. 2월 4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프랑스 2TV와의 인터뷰에서 약 4년 동안 사망한 군인이 약 55,000명이고 그 외에 많은 실종자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2025년 12월까지 우크라이나군 사상자와 실종자를 약 500,000-600,000명으로, 그중 사망자를 100,000에서 140,000명으로 추산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우크라이나 남성이 징집을 피해 숨거나 해외로 탈출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또 다른 중대한 손실은 경제 침체다. 막대한 전쟁 비용 지출로 우크라이나 경제는 전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지원과 대출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고 그 결과 국가 부채가 급증했다. <우크라이나 비즈니스 뉴스>는 우크라이나 재정부 보고서를 인용해 2025년 국가 부채가 GDP의 98.4%에 도달했고 이중 약 75%가 외채라고 보도했다.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1월 보고서를 인용해 국가 부채가 종전 후 경제 성장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 성장도 여전히 전쟁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제부는 1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5년의 GDP가 전년에 비해 2.2% 성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경제 컨설팅 회사인 GMK는 우크라이나 GDP가 여전히 전쟁 전인 2021년보다 21%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는 경제 회복을 위해서도 종전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말해준다.
전쟁에 발목 잡힌 민주주의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손실은 전쟁에 발목이 잡혀버린 민주주의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시작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엄령하에 있고 모든 선거는 종전 후로 미뤄졌다. 그 결과 2024년 5월 임기가 끝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월 11일 기자들에게 “안보 보장이 이뤄지고 휴전이 합의된 후에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미국의 압력에 직면한 우크라이나가 3개월 내에 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있다”고 한 보도를 반박한 것이었다. 그는 “물론 우리는 선거 준비가 되어 있다. 아주 간단하다. 휴전이 되면 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우선은 안보고, 그후가 정치”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상황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는 2019년 73%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키이우 국제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12월 지지율은 31%에 불과했다. 그런데 약 두 달 뒤 전쟁이 일어난 직후 지지율은 91%로 뛰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지지율은 다소 떨어졌지만 계속 60-70%대를 유지했다. 2025년 12월 조사에서도 지지가 61%, 반대가 32%였다. 흥미로운 건 그럼에도 차기 대선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 투표하겠다는 비율은 매우 낮다는 점이다.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12월 초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선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찍겠다는 비율이 20.3%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정치보다 전술이 필요한 전쟁 상황을 반영한 것임을 잘 보여준다. 나아가 전쟁이 길어지고 정부 고위 인사들의 각종 비리가 밝혀진 상황에서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심판할 수 없는, 다시 말해 전쟁에 발목이 잡힌 우크라이나 민주주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우크라이나가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과 함께 미국과 유럽 국가들로부터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받았고 그 결과 전폭적인 지지와 군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나토 가입은 사실상 무산됐지만 간절히 원했던 EU 가입을 눈앞에 두게 된 건 큰 성과다. EU는 곧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승인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인지도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는 4년 동안의 전쟁을 통해 얻은 것들치고는 너무 초라하고 허무하다.
러시아, 막대한 인명 피해와 국제 이미지 추락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전쟁 내내 우위를 점했던 러시아는 많은 걸 얻은 것처럼 보인다. 1월 말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18.5%를 손에 넣었고 사실상의 승리에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더해져 자국에 유리한 종전 합의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영토를 얻고 이를 발판으로 향후 유럽 국가들을 압박하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외에 전쟁으로 얻은 건 거의 없다.
러시아의 가장 큰 손실은 군의 막대한 피해다. CSIS는 2025년 12월까지 러시아군 사상자와 실종자 수를 약 120만 명으로, 그중 사망자를 27만 5,000명에서 32만 5,000명 정도로 추산했다. CSIS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느 국가의 군도 이렇게 많은 사상자를 낸 적이 없다면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사상자 비율을 2.5:1 또는 2:1 정도로 추산했다.
암울한 경제 전망 또한 러시아가 잃은 것 중 하나다. 전쟁 직후 가해진 서방국들의 제재는 사실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러시아 경제 규모는 전쟁 전 세계 11위에서 2025년에 세계 9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2025년 후반부터 경제 침체가 나타났고 2026년 전망은 더욱 좋지 않다. IMF는 2026년 러시아 경제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경제 침체의 원인으로는 길어지는 서방국 제재, 출산율 저하와 전쟁 사상자 증가로 인한 경제활동인구 감소, 해외 이주 증가 등 전쟁의 영향과 석유 가격 하락 등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특히 막대한 전쟁 비용 때문에 전쟁이 계속되는 한 경제 침체를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으로 잃은 가장 큰 손실 중 하나는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추락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는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그 결과 올림픽 출전 금지를 당했고 러시아 국적으로는 유럽에 입국하지 못하게 됐다.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추락했다. 전쟁이 끝나도 짧은 시간 내에 추락한 이미지와 영향력을 회복시키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4년 동안의 전쟁이 양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은 단순히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다. 전쟁을 하는 국가들은 각자의 정당성을 피력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고 결국은 모두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인류가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얻은 교훈이고 4년의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이 평범한 교훈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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