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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청소년의 우경화?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by 정주진 2026. 2. 11.

 

2024년 비상계엄과 그 이후의 탄핵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치 이념을 둘러싼 사회적 대결과 단절이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후 정치는 어느 정도 정상화됐지만 좌우를 가르는 이념 대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비상계엄과 윤석열을 옹호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온갖 가짜뉴스를 만들고 확산시킨 극우세력과 추종자들의 행태는 비상계엄과 윤석열 정권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재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모든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보수의 가면을 쓰고 사실은 공격적이고 사회 파괴적이고 나아가 비인간적인 극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공세는 2025년 초반보다는 약해졌지만 이들이 열심히 만들고 확산시키는 많은 콘텐츠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심각하게 언급되는 문제 중 하나가 이들이 만든 콘텐츠에 노출된 청소년들이다.

 

대다수 청소년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교실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비상계엄 이후부터 청소년들의 정치 밈과 괴담, 극우 콘텐츠 소비가 급증했다는 매우 당황스럽고 걱정스러운 것들이다. 각종 보도를 보면 교실에서 노무현 대통령 등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정치 밈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공포 괴담 등 극우세력이 생산하고 극우적 시각을 대변하는 콘텐츠가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청소년의 우경화가 심각한 수준이 도달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 스스로 주변 친구들도 우파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보수 7, 진보 3” 정도로 비율을 진단하기도 한다 (<“내 마음은 극우인데, 조금 혼란스러워” 10대 우경화의 진실은?>, 시사인, 202624일 보도).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영역인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상상할 수 없는 비상계엄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진 상황 이후이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청소년들 반 이상이 혐오와 가짜뉴스로 도배된 정치 관련 밈과 각종 콘텐츠를 매일 소비하고 그에 따라 우경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비상계엄 이후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극우 콘텐츠가 증가했고 그에 따라 청소년들의 관심 또한 일반적인 뉴스보다 자극적인 콘텐츠 소비에 집중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많은 청소년이 수위 높은 조롱과 혐오를 담은 정치 밈을 보고 퍼뜨리는 걸 놀이처럼 여기고, 극우 콘텐츠의 주장과 언어를 농담처럼 내뱉고,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인 공공성이나 복지 등을 언급하는 교사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교사들은 극우 콘텐츠를 소비하는 청소년들이 꼭 극우화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콘텐츠에 자주 노출되면서 우경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극우 놀이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것이 신념으로 자리를 잡기 전에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다는 게 교사들의 주장이다 (<탐사보도 소년이 자란다: ‘노무현 조롱이 놀이가 된 교실, 교사들 민원 무서워 아무 말 안 해요”>, 한국일보, 202592일 보도)

 

교실에서 조롱과 혐오를 담은 정치 밈과 극우적 시각을 담은 콘텐츠, 극우적 표현과 언어가 난무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당황스럽고 다른 한편으로 공포스럽다. 보수가 아니라 증오와 혐오에 기반해 정치적,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극우세력이 많은 청소년의 일상을 거의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진단이 이뤄지면서 여러 가지 대책 또한 나오고 있다. 그중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확대다. 청소년들이 조작된 정보를 담은 가짜뉴스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교실에서의 정치 현안 토론과 올바른 시각을 가진 시민을 기르기 위한 민주시민교육 또한 언급되고 있다. 모두 맞는 말이고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접근으로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룰 수 없다. 청소년들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조롱과 혐오를 담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극우적인 시각에서 중국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증오하고 욕하는 것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는 우경화가 아니다. 청소년들은 극우세력처럼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극우세력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극우 콘텐츠의 지나친 소비로 인해 일부 청소년들의 우경화가 우려되는 점이 있지만 여러 보도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많은 청소년은 그런 콘텐츠를 놀이처럼 소비하고 퍼뜨린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조롱과 혐오를 담은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의 부재, 그런 콘텐츠를 퍼뜨리는 것에 대한 수치심의 부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한 조롱, 혐오, 욕설, 멸시, 차별 등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 및 행동과 관련된 문제로 인류 보편적인 상식과 기준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런 보편적 상식과 기준은 보수나 진보 같은 정치적 입장이나 민족적, 문화적 배경에 따른 고려나 핑계 또한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이면 누구나 배경과 상관없이 공격, 모욕, 차별 등을 당하지 않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인권과 관련된 문제기도 하다. 청소년들이 거리낌 없이 누군가를 조롱하고 혐오하고 멸시하고 차별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건 인류 보편적인 상식과 기준에 무지함을 보여준다. 또한 스스로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점검할 능력이 매우 부족함을 보여준다. 이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적 만족을 위해 존중받아야 할 타인의 권리를 부인하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할 정도로 인격적으로 미성숙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의 극우 콘텐츠 소비 문제에 대한 언급과 대응에 있어서는 인간사회가 공유하는 본질적인 문제, 즉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 보편적 인권을 함께 다루는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다른 입장과 견해를 가진 개인과 집단에 대한 배척, 조롱, 혐오가 아닌 상호 존중과 권리의 인정, 그리고 그에 기반한 공존하는 사회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도록 돕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접근을 위해 고려할 수 있는 것이 평화교육이다. 평화교육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배경의 개인과 집단이 공존하는 사회와 세계를 위해 누구도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다양한 사례를 탐구하고 그에 대한 토론과 활동을 통해 누구나 가해를 저지를 수 있고 자신의 태도와 행동 또한 많은 사람에게 폭력이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와 세계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세계시민교육 또한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경계를 넘어 세계시민으로 인종, 민족, 문화, 국가 등의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를 똑같이 존중하고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도록 안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평화교육의 핵심은 결국 인간성 확인이며 이를 통해 사람에 대한 존중, 배려, 이해와 관용, 더불어 삶의 의미와 중요성 등의 가치와 현실적 필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러 민감한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단절이 심한 국가다. 그런 와중에 생긴 비상계엄은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심각한 이념 갈등의 표출이었고 극단적 정치 갈등의 새로운 시작이 됐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에 절망을 가져왔고 동시에 현실을 뒤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직은 다양한 분석이 진행 중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념 갈등이 단지 이념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며, 이념 갈등에서 비롯된 사회적 단절과 그 영향이 단지 정치적 편가르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소년들의 극우 콘텐츠 소비는 그런 영향의 확장성과 의외성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극우 콘텐츠의 영향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우경화라는 단어로만 진단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이제라도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수십 년 동안 먹고 사는 문제생존 경쟁에 집중하면서 이념 갈등의 심각성을 외면해왔던 것처럼 학교와 가정에서 사람에 대한 존중, 공존의 사회에 대한 토론과 안내 등을 소홀히 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깊게 고민해야 할 건 어떻게 다른 이념, 정치적 입장, 가치, 세계관 등을 가진 사람들이 상호 간 공격, 비난, 배제, 무시 등을 중단하고 최소한의 존중과 인정에 기반해 더불어 살 수 있느냐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사회의 방향성을 어떻게 교실과 입시 지옥에 갇혀 극우 콘텐츠의 무분별한 소비와 사람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통해 재미를 찾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청소년들과도 나눌 것이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