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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동족' 거부한 북한, 그래서 절실한 평화적 공존

by 정주진 2026. 3. 1.

25일 폐막한 제9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26일 김 위원장이 20-21일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결산)보고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다고 말했음을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과 관계가 완전히 소멸된 현재의 상태를 영구화할 것을 언급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오도된 과거를 되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과 국경이 접한 상황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와의 모든 것을 단념하고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으로 다루어 나가려는 우리의 결심과 의지는 강고하며 결론적이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2023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교전 중인 국가로 규정하면서 천명한 적대적 두 국가기조의 강화와 재확인을 의미하며 이런 절연 선언의 밑바탕에는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깔려 있다. 우리 언론이 이런 김 위원장의 강경한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건 북한의 강경 입장 재확인에 우리 사회가 상당히 충격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작년에 출범한 새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고 적대적인 태도와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북한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적대적 두 국가를 재확인하고 남북 관계 단절을 강조한 건 남북 관계가 최악의 수준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큰 실망감을 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남북 관계는 이미 오래전 형성됐으며 202312월 북한이 천명한 적대적 두 국가 기조는 사실상 우리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적대감을 표출한 데 대한 답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북한의 단호한 입장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적 필요를 확인하고 중.장기적인 대응 방향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사진 출처: 통일부 홈페이지

 

 

남북 관계에서 전통적으로 언급되어 온 건 통일이다. 지난 정권에서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기 전까지 통일은 남북이 공유한 궁극의 공동 목표였다. 그러나 이제 북한은 통일은 물론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의 특수한 관계까지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통일은 폐기해야 할 목표가 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통일의 상대인 북한이 현재 거부하고 있지만 향후 상황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더 먼 미래의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미래의 남한 또한 마찬가지다. 통일의 상대인 북한이 거부하는 한 남북 간 통일 논의는 적어도 지금은 계속되기 힘들겠지만 언제든 현실적 논의 주제로 재부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통일을 전제로 한 기존의 남북 간 합의들이 여전히 유효하고 북한의 일방적 통일 거부 표명에도 분단된 역사에 기반한 오래된 남북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통일 논의가 완전히 폐기될 수는 없다는 걸 말해준다.

 

남북 관계의 기본적인 전제는 평화적 공존 관계다. 남북 간 통일 논의가 이어지고 있을 때도 기본적인 전제는 평화적 공존이었고, 이는 굳이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상호 안전을 위해 남북 간, 그리고 이웃 간 반드시 필요한 관계다. 비록 우리 정부의 이념 성향에 따라 이를 추구하는 방식이나 적극성에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치이자 방향이고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필요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을 전제로 하든 하지 않든 지금의 경직되고 적대적인 남북 관계를 공존의 관계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노골적인 적대감 표출로 평화적 관계 수립과 정착의 필요성은 더 높아졌다. 다만 북한의 강경한 입장과 태도로 이것이 이전보다 훨씬 더 도전적인 일이 됐다는 건 매우 유감스런 점이다.

 

김 위원장이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말한 건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런데 이는 역설적으로 남북 관계가 동족에 기반해 있음을, 다시 말해 강한 어조로 거부하고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쉽게 외면할 수 없는 것임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라는 점이 거부할 수 없는 남북 관계의 근간이더라도 이 발언을 쉽게 외면할 수는 없다. 또한 이를 우리 사회의 인식을 확인해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정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 보는 정서가 옅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나아가 일부 사람들은 같은 민족이라는 점을 차치하는 건 물론 북한을 상호 안전을 위해 공존해야 할 이웃도 아닌 적으로 보고 있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히 옅어졌다. 여러 기관의 여론조사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의 이유로 같은 민족이니까를 꼽은 사람은 200750.6%에서 202531.4%로 큰 폭으로 낮아졌다. 반면 남북 간 전쟁 위협을 없애기 위해를 꼽은 비율은 200719.2%에서 2025년에는 36.9%로 통일의 이유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한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북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01643.1%에서 2025년에는 63.2%로 높아졌다. 이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이 201637.3%에서 202517.2%로 낮아진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런 수치 변화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70년 이상의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지속된 적대 관계로 민족적 동질감과 연대감보다는 이질감과 적대감이 자연스럽게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진보 성향 정부에서 있었던 비교적 짧은 기간의 관계 개선 징후와 그후 보수 정부에 의한 적대 관계로의 복귀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기대 또한 낮아졌다. 게다가 청년과 청소년 세대는 북한이나 남북 관계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통일을 위해서 북한과 반드시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통일을 했을 경우 부담해야 할 비용과 직면할 수 있는 사회 혼란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크다. 이런 점들은 민족이 더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설득할 통일의 정당성이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같은 민족이라는 점이 무색하게 다른 국가보다 북한에 더 혹독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고 이는 민족이 필요에 따라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함을 보여주곤 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우리 사회 많은 구성원이 더는 민족이나 통일의 당위성을 수용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 이후 70년 이상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호 안전과 번영을 위해 남북 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쳤고 결국 남북 관계는 현재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이유로 이제는 많은 사회 구성원이 민족담론이나 통일당위성 등은 잊고 북한과 그냥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이웃으로, 상호 불이익은 주지 않고 별일 없는상태로 지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가장 큰 도전이자 과제고 이는 통일을 하든 하지 않든 결국 좋은 남북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김 위원장이 남한과의 동족관계를 공식적으로 부인한 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우리 사회 안에 이미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한 무관심 정서와 나아가 적대감 또한 넓게 퍼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 통일 등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건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관계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평화적 관계를, 적어도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 간 평화적 관계가 형성되고 정착되면 다시 민족, 통일 담론이 활성화할 수도 있다. 남북의 평화적 공존은 어떤 상황에서든 상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세대는 어떤 생각과 선택을 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래 세대의 선택의 여지가 넓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관계에 대한 현재의 무관심과 외면이 미래에 한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