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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학의 평화 접근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3. 5. 00:00
평화학 강의를 하다 보면 가끔 세상만사가 결국 다 '평화'라는 큰 주제 안에 포함되는 것인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사실 평화, 그리고 평화에 도전이 되는 폭력의 문제를 언급하다 보면 한국 사회, 나아가 지구촌이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다루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다뤄온 평화 현안들만 해도 작은 공동체 내의 폭력 문화와 갈등에서부터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경제 정의, 지구촌의 빈부 격차와 기후변화까지 종류가 다양하고 범위도 넓다. 그렇다면 평화학, 또는 평화 담론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루려는 것일까? 또는 평화는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일까? 대답은 'yes', 그리고 동시에 'no'다.
평화학, 또는 평화 담론은 세상의 많은 문제를 다룬다. 그래서 때로는 사회학, 개발학, 국제관계학 등 많은 학문 분야들과 연구 주제를 공유한다. 그러나 같은 연구 주제를 다루더라도 평화학의 접근은 다를 수밖에 없다. 평화학이 어떤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그 주제와 관련해 폭력적 요소가 존재하고 평화의 필요가 절실하기 때문이고, 그런 연유로 평화적 문제 해결과 평화의 성취를 위한 사회적 조건과 인적 자원을 탐구하고 조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학에서 특정 사회 또는 국제 문제에 접근하는 것과 사회학 또는 국제관계학에서 접근하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학은 '빈곤'을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보지만 평화학은 구조적 폭력의 문제로 보고 빈곤층을 그런 폭력의 희생자로 이해한다. '내전' 문제를 다룰 때 국제관계학은 내전의 종식 가능성과 국제정치의 영향 분석에 초점을 맞추지만 평화학은 고통 받는 사람들과 평화로운 방법에 의한 내전의 종식을 고민한다. 평화학은 또한 가해자를 추방하거나 전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전의 종식과 함께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 재건을 고민한다.
그러므로 평화학이 목표로 삼는 것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평화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평화학은 세상의 문제가 폭력의 발생과 악화에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어떻게 평화의 성취에 도전이 되고 있는지,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분석과 해석에 따라 어떻게 폭력을 제거하고 평화를 성취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세상 문제가 평화학의 레이다 망에 잡혔고 폭력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져 결과적으로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다루게 된 것이다.
평화는 현재 우리 사회와 세계가 당면한 많은 문제에 해답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현재 세상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로 인해 희생자가 늘어가는 이유는 해결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해결책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자들과 실천가들이 많은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지 않고 자신의 것을 정당한 방법으로 나누려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꼭 평화 연구 또는 평화 담론에 토대를 두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에 의해 문제가 해결된다면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평화학 또는 평화 담론은 그 많은 해결책을 더 설득력과 실천력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다만 평화학 접근의 차별점은 결과와 동등하게 과정도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과정 안에서의 폭력을 배제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평화적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평화학의 접근이다. 그리고 덧붙여 연구와 담론이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정 사회 또는 국제 현안에 대한 접근이 진정 '평화 담론' 또는 '평화 논의'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느냐의 여부는 평화학의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석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다른 학문 연구에 토대를 두고 '평화'를 논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평화학의 접근과는 다를 수밖에 없고 결국 보편적 평화의 개념을 내포한 평화 논의 또는 담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국제관계학에서 말하는 평화는 보통 군사력 및 외교력의 균형을 통한 상호 견제 또는 적대적 공존이지 평화적 공존이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 의미의 평화로 이해될 수 없다. 종교학에서 언급하는 평화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가르침과 영적 생활을 강조하기 위한 평화지 평화학에서 연구되는 보편적 평화는 아니다. 그런 접근에서는 평화가 중심 역할을 하지 않고 단지 그 학문 영역의 연구 주제를 보다 잘 분석 및 해석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학문에 토대를 두고 평화를 논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며 평화학이 아닌 다른 학문 분야에서 '평화'를 논할 때는 그 분야의 핵심 주제와 방식이 주인공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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