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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는 평화학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2. 8. 00:00
평화학(Peace Studies)은 한국에는 없는 학문 분야다. 학문 분야가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대학에 학과에 개설돼 있어 체계적인 커리큘럼에 의해 전공자를 양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연구자 집단이 형성돼 있어 지속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연구 결과에 대해 비판적 평가와 토론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두 가지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므로 한국에는 평화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학문 분야로서 평화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에서 평화 연구가 아예 이뤄지지 않는 것도, 평화학 과목이 개설돼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평화학 과목은 여러 학과에서 선택 과목으로 개설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평화학 전공자가 강의를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어 보편적 평화 이론에 근거해 내용이 구성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평화 연구는 크게 두 영역에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평화학 이론과는 상관없이 한반도 평화 통일과 관련해 이뤄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학 이론에 기반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 통일과 관련해서는 남북 관계, 남북 공존, 안보 문제, 한반도와 관련된 국제 현안 등이 주로 다뤄진다. 평화는 남북 관계의 개선, 군사적 충돌의 부재, 교류의 확대 등 한반도 안전과 번영의 맥락에서 해석되고 큰 통일 담론 안의 한 주제로 언급되곤 한다. 한반도 평화 통일과 관련해 다뤄지는 평화는 여전히 안보, 군사, 국제관계 등의 보수적 개념과 밀착돼 해석되고 보편적 평화 이론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평화 연구라 보기 힘들다. '평화'라는 용어를 쓰는 것일뿐 거의 대부분이 평화학과는 상관없는 연구다.
평화학의 보편적 평화 이론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는 평화 연구는 극소수 연구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들 연구자들은 평화학 또는 평화갈등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학문에 토대를 두고 평화학 이론을 탐구하고 평화 이론에 근거해 현상을 분석하고 재해석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세계 평화학의 발전 과정을 볼 때 한국에서도 평화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평화학을 새로운 분야로 삼는 연구자들이 등장하고 연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확대되면 평화학이 학문 영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에 비춰볼 때 몇 년 안에 평화학이 학문 영역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는 갈등해결이 평화학과 분리돼 연구되고 있다. 평화학 안의 응용 실천 분야로 갈등해결이 연구되고 있는 세계 추세와는 달리 갈등해결이 분리돼 한국에서 연구되고 있는 이유는 한국사회에 갈등이 많아지면서 다른 학문 분야 연구자들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다 갈등해결에 접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갈등해결의 기제와 현장 실행만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한 나라 안에서 평화학 안의 갈등해결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없이 갈등해결 방법론만 연구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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