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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학생들, 폭력 구조의 말단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4. 19. 00:00
온 나라가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하루 아침에 3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사라졌다. 여전히 실종 중인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 살아남아 우리 곁으로 돌아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만 늘고 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실종자 중에 나이 어린 청소년들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안타깝고 화나는 것은 그 아이들이 적절한 수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승객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학생들이었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성인 승객들에 비해 학생 실종자 수가 월등히 많은 것이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런 일이 일어나면 매번 뒷북치는 일을 하게 되지만 그런 상투적인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많은 희생을 단순한 사고로 생각해 버릴 수 있다. 그러기엔 그 많은 희생이 너무 애통하다.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부른 근본원인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구조다. 그리고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피해를 가한 잘못된 구조는 학교다.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세월호에 승선한 학생은 325명이었고 인솔 교사는 15명이었다. 그중 교감과 담임을 맡지 않았을 교사들을 빼면 실제로 교사 한 명이 맡아 돌봐야 할 학생은 30명 정도였을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고등학교 평균 학급 학생수는 32.5명이라고 한다. OECD 국가 평균의 23명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수다. 30명이라는 인원은 학교 밖의 새로운 환경이 가져올 수많은 변수들을 생각할 때 한 명의 교사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숫자다. 물론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이 이것에 있지는 않지만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한 학생들이 신속하게 대처하고 충분히 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에는 이런 환경도 기여했을 것이다.
수학여행은 주요 학교 행사 중 하나다. 수백명의 학생들이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은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지만 학교들은 수십년 동안 축적해 놓은 나름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매년 행사를 진행한다. 사실 그 비법이라는 것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잘 통제하고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는 아주 어설픈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직면할 위험에 대한 실질적인 대비는 없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 이외 외부 변수들을 생각한다면 학교 밖으로 수백명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행사에는 추가 인원이 배치돼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학교도 자원봉사자나 일일 교사 같은 인원을 추가로 동행시킨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것의 근본원인은 정부 교육 예산의 부족이지만 넉넉치 않은 수학여행 예산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대한 안전을 생각하기보다는 싼 교통 수단과 숙박시설로 전체 일정을 도배하기가 일쑤다. 세월호에서도 학생들은 200명을 수용하는 대형 객실에 있었다. 예전에는 극기훈련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했고 그후에도 수련회나 수학여행 사고가 종종 발생했지만 그것이 학교라는 오래되고 경직된 구조를 바꾸는데 별 기여는 하지 못한 것 같다. 어쨌든 학생들의 안전을 완전히 담보해주지 않는 그런 여행은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학교들은 수십년 동안의 관례대로 학생들의 안전을 100% 담보하지 못해도 학생들을 보낸다. 이런 잘못된 구조에 희생되는 것은 학부모나 일반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저항도 못하고 따라야 하는 가장 약한 학생들이다.
세월호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선장은 입사 4개월 밖에 안된 3등 항해사에게 가장 위험한 구간의 운항을 맡겼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보호할 책임을 저버리고 오히려 승객들보다 먼저 탈출했다. 과연 그들이 제대로 승무원의 임무와 도덕적 책임을 알고나 있었을까 의심이 든다. 글자로만 존재하는 승무원의 운항 규정은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사실과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적인 직업 윤리와 책임감도 없는 사람들을 그 많은 승객들을 책임지도록 한 청해진 해운의 잘못된 구조다. 비행기 승무원 교육은 깐깐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고가 날 경우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사고 상황에 승객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승무원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에서는 아주 신속하게 승객 대피가 이뤄진다. 대형 여객선도 위험하기는 비행기에 맞먹는다. 기존의 국내,외 사고들이나 이번 사고로 봐도 그렇다. 그런데도 그렇게 허술하게 승무원을 관리하는 회사의 구조는 승객들에게는 흉기와도 같다. 제대로 된 승무원들이 있었다면 제일 먼저 어린 학생들이 몰려 있는 객실로 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준비를 시키고 신속하게 대피시켰을 것이다. 사고 원인으로 가장 의심이 가는 화물과 관련해서도 청해진 해운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얼만큼의 화물을 실었는지 파악도 안되고 있고 그 화물들이 잘 묶여져 있었는지도 의문인 상황이다. 돈버는 데만 급급해서 몇 백명 승객의 안전에는 관심도 없는 회사의 잘못된 구조가 사고를 만들었고 결국 학생들이 가장 큰 희생자가 됐다.
세월호가 운항을 시작하게된 것과 관련해서는 정부 차원의 잘못된 구조가 문제였다. 세월호는 한 마디로 노쇠한 배다. 대략 배의 수명이 20년 정도인데 일본에서 들여올 때 이미 18년이 된 여객선이었다. 그렇게 퇴역이 가까운 배가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선령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된 때문일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렇게 비싼 배를 몇 년 쓰고 폐기시키려고 사들일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증축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는 객실을 증설해 승선 인원을 늘렸고 때문에 239톤이나 무게가 늘었다. 이미 일본에서 한번의 증축으로 무게가 늘었기 때문에 두 번째 증축이 된 것이다. 때문에 배가 흔들릴 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복원력이 문제가 됐는데 이상하게 1차에서 퇴짜를 맞았지만 2차에서 개선 없이 그냥 허가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사람을 싣는 여객선의 안전을 너무나 쉽게 다루는 잘못된 구조가 결국 이런 사고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고 당시 허둥거렸을 학생들의 모습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세상 경험도 부족한 아이들은 판단력이 부족하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전적으로 어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교사도 승무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운이 좋았던 소수의 아이들만 극소수 교사, 승무원, 주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할 수 있었다. 안전 체계가 전혀 없는 가운데 그야말로 운에만 기댔던 것이다.
학교, 청해진 해운, 해양수산부와 정부 등의 모든 잘못된 구조가 결국 학생들의 희생을 만들어냈다. 학생들의 희생이 가장 많은 것은 그들이 층층이 쌓인 잘못된 구조의 가장 말단에 처해 있는 가장 약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구조가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항상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사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시 말해 여러 층에 존재하는 잘못된 구조적 문제의 결과가 집중된다. 모든 문제가 말단으로 집중되지만 그들은 위에 층층이 존재하는 잘못된 구조를 개선할수도, 그것에 저항할 수도 없다. 사회 다양한 층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잘못된 구조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직접적 의도가 없다 할지라도 폭력적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세월호 학생들이 바로 그 희생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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