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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 진짜 군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4. 4. 3. 00:00
2013년 4월, 텔레비전에 '이상한 놈(프로그램)'이 나타났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군대가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것이다. 군대를 리얼 예능에 이용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공영방송 MBC의 일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는 방영을 시작한지 거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인기가 많단다. 사람들이 왜 보는지 알아보려고 몇 번이나 노력해 봤지만 난 사실 5분 이상 보기가 힘들다. 날벼락 같은 군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심지어 이미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까지), 지나치게 '특별한' 군생활을 억지로 정당화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군대라는 특수 상황을 억지로 강조하면서 사실은 민간인인 연예인들에게 '상식'을 넘어선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군대는 남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악몽같은 현실이다. 오죽하면 최악의 악몽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이겠는가. 인생의 황금기인 청춘을 가장 멍한 상태로 지내야 하는 군대는 남자들에게 분명 최악의 인생 경험이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그것을 추억하는데 열을 올린다. 그래서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허무맹랑한 말도 만들어 냈고 온갖 군대 무용담도 만들어냈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그런 무용담은 군대에 갈 의무가 없는 여자들을 포함 전국민에게 전파됐다. 대한민국 국민 중 군대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들려주는 미화, 과장, 희화화된 군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것이 인생의 암흑기를 잊기 위한 남자들의 몸부림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강요당했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처럼 생각될 때가 많다. 일종의 트라우마 힐링이랄까. 가장 폭력적인 조직이고, 인간 뇌의 정상적 작동을 저해하는 비인간적인 공간이며,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부과하는 군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인 것처럼 여겨져왔다. 여전히 남자들의 군 복무는 신성시되고 분단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애국이자 의무로 묘사되고 있다.
군대 예능 프로그램의 시작은 케이블 방송의 '푸른 거탑'이었다. 거기서는 멀쩡한 성인 남자들이 군대라는 억압된 공간과 조직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온갖 유치하고, 비상식적이며, 비겁한 일을 벌이는 얘기가 다뤄졌다. 그런 면에서 '푸른 거탑'은 솔직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자 시청률에 목숨 건 MBC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진짜 사나이'였고, 한 마디로 대박을 쳤다. 그런데 공영방송인 MBC가 군대에서 이뤄지는 온갖 비상식적, 비인간적, 비민주적인 행태를 미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여전히 의문이다. '진짜 사나이' 바로 앞에 방송하는 '아빠, 어디가'에서는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배려심 많은 아이들의 모습을 강조하니 방송사의 자기 모순이 과하다 싶기도 하다. 어쨌든 '진짜 사나이'는 이런 저런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군인들의 힘든 일상을 보여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는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정말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방'과 '국가 안보'라는 상위 개념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포함한 다른 것들은 모두 희생해도 좋다는 아주 구시대적인 안보관을 대놓고 광고하는 것이다.
군대가 공중파 방송의 예능에 등장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모순 투성이다. 일반 상식 수준에서 생각해도 군대는 비밀유지가 돼야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이런 저런 부대가 버젓이 예능 프로그램에 그 속내를 내보인다. 물론 내보여도 되는 것들만 추렸다고 얘기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것은 모순이다. 그리고 민간인들이 견학도 아니고 군부대에서 며칠씩 진짜 군인들과 같이 지내고 진짜 훈련에 참가하는 것도 비밀유지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외국인들의 기용은 더욱 더 모순이다. 샘 해밍턴이라는 호주인이 있고, 최근에는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중국계 캐나다인인 헨리라는 아이돌 그룹 멤버가 합류했다. 잠깐 이 친구를 보고 참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군대라는 비상식적으로 경직된 조직에 작지만 의미 있는 '딴지'를 거는 이 친구의 행동이 신선해 보였다. 그런데 얼마나 버티겠는가. 거기는 어쨌든 군대가 아닌가. 어쨌든 외국인들에게 민감한 군시설을 모두 보여주고, 심지어 대한민국 국민도 알 수 없는 부대 깊숙이 들어가 훈련하고 생활하는 것도 허락하고 있다. 이 모두가 군이 여전히 많은 부분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비밀로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모순된다. 이쯤되면 국방부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군이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 적극 협조하는 것은 물론 홍보를 위한 것이다. 법으로 지위가 확고히 정해져 있고 징집제로 병력까지 보장받는 나라에서 군이 왜 홍보가 필요한 것일까? 이것은 군이 이미 하나의 이익집단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군은 다른 이익집단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상황에 비해 장성이 지나치게 많은 군 조직을 유지하고, 최신 장비와 첨단 무기를 사들일 예산을 확보하고, 육.해.공군의 각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국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지만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고, 간혹 일어나는 국지적 충돌도 단발적 사건으로 마무리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은 참 할 일없는 집단이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그 많은 병력과 비싼 장비와 첨단 무기를 푹푹 썩히는 것 외에 달리 하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군은 이런 현실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결국 리얼 예능에까지 뛰어든 셈이다. 이런 군의 선택은 군 이미지 향상을 위해 온갖 군생활 개선을 시도하고 연예인 병사들을 동원해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예쁘고 따뜻하게 포장을 해도 군대는 군대다. 군대는 수많은 청년들을 일정 기간 거의 무뇌아로 살도록 강요하는 참 비인간적이고 비생산적인 조직이다.
'진짜 사나이'가 가져온 한 가지 긍정적 효과는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군과 관련된 것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는 일반인들의 생각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신비주의를 유지하던 군의 봉인이 조금씩 해제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은 군이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면 그동안 온갖 모순을 가지고 있던 군에 대한 의문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군의 특수한 임무와 의무는 인정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특별 취급 또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성역이 아니라 자기 이익에 더 관심이 많은 사회 집단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군 조직에도, 군의 규모에도, 국방 예산에도, 병력 규모에도, 그리고 군이 병사를 다루는 방식에도 좀 더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 검찰, 심지어 국정원까지 국민들의 감시 대상이 된 세상에 군만 국민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특혜를 누리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군의 필요 수준, 국방 예산의 규모, 첨단 무기의 효용성, 군축의 가능성 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부와 군의 결정에만 맡겨두지 말고 우리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고민해야 한다. 남북 긴장이 높아가는 시점에 무슨 무책임한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북 긴장이 높아갈수록, 남북이 충돌할수록 우리는 평화적 공존의 비전을 세워야 하고, 그 비전을 성취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고민해야 한다. '진짜 사나이'가 기를 쓰며 미화하려는 군의 제모습을 봐야 하고, 군의 존재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며, 특별히 한반도의 평화와 관련지어 군의 역할을 성찰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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