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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편들기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4. 9. 1. 00:00
갈등은 사람 사이에서 흔하게 발생한다. 그럼에도 갈등에 면역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서는 다소 면역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항상 찜찜함은 남는다. 왜 그럴까? 갈등은 발생할 때마다 다른 이유, 다른 관계, 다른 주변 상황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갈등은 그 전개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등에 직면할 때마다 매번 당황스러워 하고 불안해한다. 자신의 갈등이 아닐 때도 당황스럽고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둘 중 한 편을 들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문화에서 특별히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변 사람들이 갈등에 직면했을 때 편들기의 압력을 받는 이유는 관계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관계는 개인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누구도 관계를 거부할 수 없고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갈등에 직면했다면 어떻겠는가? 거기에 더해 갈등에 직면한 양쪽 당사자가 자신과 모두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한 마디로 최악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들기'의 압력을 받는다. 갈등 당사자로부터 요청을 받지 않아도 한 편을 들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과는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사람과의 관계, 또는 둘 중 누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을 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편들기와 관련해 먼저 생각할 것은 편들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설사 관계가 깊은 사람이 갈등에 처했고 암묵적으로 편들기를 요청한다 해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편을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가장 중요한 것이 듣기다. 그 사람의 얘기를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길 바라고 그것으로 만족해 한다.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해결책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듣는 자가 해야 할 일은 아니고 상대도 원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결을 원한다면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듣는 것은 편들기와는 상관이 없다. 듣는 것 자체가 지지를 표하고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듣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말과 해석을 존중해 주는 것일 뿐이다. 편들기를 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듣기는 그러므로 갈등 양 당사자 모두와 관계를 맺고 있을 때도 가능하다. 물론 양쪽의 얘기를 다 들으면 누구 말이 맞는지 더 헷갈리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갈등 당사자들은 모두 자기의 입장과 이익에 맞춰, 그리고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토대를 두고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등에서 편들기는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관계의 문제일 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갈등이 옳고 그름의 문제, 즉 누군가 부당하게 희생을 당한 상황에서 발생했을 때가 그렇다. 이럴 때의 편들기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마을, 직장, 동호회 같은 집단 내에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그것이 한 쪽이 잘못해서일 다른 쪽이 희생당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물론 이 때도 편들기는 사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갈등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집단 전체로 갈등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얘기하고 인정할 수 있는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갈등 당사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대화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매도하는 공간이 되지 않아야 한다. 갈등 당사자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편들기를 한다면 대화 자리가 마련되도 진실과 옳음의 규명이 아닌 비난과 성토에 집중될 것이다.
편들기가 가장 위혐해지는 것은 약자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다. 집단 내에서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해 갈등이 발생한 경우 사람들은 처음엔 억울할 일을 당한 사람의 편을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일이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되면 사람들은 집단의 조화가 깨지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에 갈수록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 상황이 되면 자주 발생하는 것이 편들기의 취소다.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 대한 편들기를 그만두고 이제는 그 사람에게 소위 '집단의 평화'를 위해 포기를 종용하게 된다. 이런 가짜 평화의 주장은 곧 불의의 묵인과 정의의 외면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의를 위한 희생' 또는 '집단의 번영을 위한 포기" 등 말도 안되는 민망한 명분들을 들이댄다.
어쨌든 결론은 편들기는 대부분의 경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편들기는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들이 갈등에 직면했을 때 중요한 것은 편들기가 아니라 그들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지해주고 지원해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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