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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폭발하는 사람들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4. 9. 6. 00:00
명절은 좋은 날이다. 특별히 오랫동안 못보던 형제, 자매, 부모,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모두 앉아 한국적인 가족의 의미를 새삼 눈으로 확인하면서 끈끈한 정을 확인하는 때다. 그런데 명절에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중 하나가 말싸움이다. 좋은 음식을 먹고 힘이 솟아서인지 가끔은 멱살잡기나 '한 방 먹이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사람이 많으니 말리는 사람도 많고 그러니 더 시끄러운 일이 되곤 한다. 물론 온 동네에 망신살이 뻗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말이 가족이지 평소 잘 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오랫만에 모였으니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오래된 앙금이 치고 올라와 생기는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명절에 생기는 이런 '사고'는 절대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오랫만엔 만난 사람들 사이에 말싸움이 생기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등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관계지만 이들이 각자 가정을 이루고 일년에 고작 2-3번 만난다면 더욱 더 그렇다. 사실 혈연관계를 떼 놓고 본다면 이들은 내용상 가족이라고 하기 힘든 관계다. 이미 각자 가족을 이루고 다른 사회 영역에서 생활하면서 성인이 되기 전 소속됐던 가족과는 수십 년 동안 떨어져 살았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에 익숙해지고 다른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비록 부모, 형제, 자매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그 자연스런 다름 때문에 속상할 일도, 서운할 일도, 화날 일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 다름을 이미 머리로 알고 있을텐데 왜 사람들은 하필 명절에 폭발하는 것일까? 뭐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하소연하기 위해, 편들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서운함과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또는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등등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유 없이 폭발하는 정신나간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폭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 또는 특정인에 대해 이전부터 쌓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어긋났거나 원만치 못한 관계를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명절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진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다. 그렇지만 어긋난 감정도 관계도 무시할 수 없으니 누군가 살짝 건들면 폭발하는 것이다.
명절에 폭발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에라 모르겠다'라든가 '될대로 돼라'라는 막가파식 태도가 있긴 하지만 비난받을 것을 알면서도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그러는 이유는 절실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심정적으로 동의를 표해주고, 위로를 해줄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슴 깊이 꼭꼭 묻어두었던 묵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비난과 욕설은 오히려 감정을 더 격화시키고 공격적인 행동을 자극할 뿐이다. 명절에 폭발하는 사람을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다. 뭔가 가슴에 쌓인 것을 풀 수 있도록, 그동안 말로 하지 못했던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폭발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모인 사람들에게 진짜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원래 싸가지가 없고, 안하무인이고, 공격적인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조차 비난과 욕설은 효과가 없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포용적 태도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부정적 에너지를 껴안아 순화시킨 후 대신 다른 에너지, 즉 포용적인 에너지를 내보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적어도 가족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명절 음식에 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한가지 되새겨야 할 것은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그로 인해 어쩌다 한번 폭발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절대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또는 심정적으로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일수록 서운한 일도, 오해할 일도 많은 법이다. 특별히 말은 가족인데, 그래서 위로받고 이해받고 싶은 것은 많은데, 사실 자주 만나지는 않으니 상호 이해가 어려운 대가족의 현실에서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갈등은 어떤 관계에서든 사회에서든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갈등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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