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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한다는 것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4. 8. 27. 00:00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는데 상대가 자기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점잖게 하는 말이 '대화로 풀자'는 얘기다. 이 말은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체면을 지킬 필요가 많은 사람들일수록 선호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적 위치와 체면 때문에 성질대로 대거리를 할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런데 대화를 정말 바람직한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대화가 되지 않는 상황을 너무 많이 목격하곤 한다. 분명 '대화를 하자'고 앉은 사람들이 자리를 뜨면서 하는 말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욕지거리가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것은 대화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특별히 상대가 얘기하는 내용과 상대의 태도가 불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화를 하자고 마주 앉은 사람들이 결국 왜 이런 얘기를 하며 불만족을 토로하고, 심지어는 상대를 비난하면서 헤어지는 것일까? 이런 일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대화를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방법으로 오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상대가 결국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대화에 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데 주력한다. 당연히 자기 주장의 합리성, 논리성을 강조하고 상대의 주장을 비판, 비난하는데 주력하곤 한다. 양쪽이 다 이런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니 대화가 될리가 없다.
대화는 절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다.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문제나 갈등에 직면한 사람들이 서로의 이견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에 임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만큼 다른 쪽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만약 한쪽의 주장만 얘기된다면, 또는 서로 자기의 주장만 얘기하고 이견을 듣지 않는다면 대화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상대와 대화하기로 결심했다면 맘에 들지 않아도, 심지어 속이 꼬여도 상대의 얘기에 귀를 귀울일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말은 그런 각오가 돼 있지 않으면 대화를 요구하지도, 대화에 임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자신의 주장이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란 생각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대를 비정상인 것처럼 취급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의 주장을 비판, 비난하는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 또한 대화를 요구하지도, 대화에 나서지도 말아야 한다. 설사 속이 매스껍고, 상대의 주장이 허접해보이고, 상대의 속물적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더라도 대화를 시작하면 상대의 주장을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의 목적은 상대의 주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주장과 상대 주장과의 절충점을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간혹 시간벌기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화에 힘의 관계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시간벌기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화를 이용하려는 쪽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힘이 강한 쪽이고 그런 의도에 희생되는 쪽은 상대적으로 약한 쪽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사실 개인의 일상에서, 그리고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용되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기본적으로 힘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대화는 상대의 얘기를 듣고,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다른 주장과 필요가 있을 뿐이다. 힘이 끼어들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 대화는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힘이 강한 쪽이 대화를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상대에게 자기 것을 부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힘이 약한 쪽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더 억울하게는 결국 강한 쪽에게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불상사를 피하는 방법은 비록 완전한 힘의 균형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강한 쪽이 약한 쪽의 존재와 힘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기다리는 동안 약한 쪽의 힘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화에 임하는 기본조건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만큼 상대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비난은 이미 많이 주고 받았기 때문에 다시 비난에 주력하는 것은 대화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나아가 서로 공유점과 상이점을 찾고 그것을 추가 분석해 공동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겠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외에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사람의 생각이 다른 것은 자연스런 일이고, 상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거의 블가능한 일이다. 결국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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