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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소통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4. 8. 13. 00:00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이 무효화되고 협상은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천만다행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이전보다 험난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여.야의 티끌만큼 남아 있던 신뢰는 재처럼 날아가 버렸고 이제는 전보다 깊어진 불신 위에서 재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대 야소의 상황이고, 재.보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 지지율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니 앞길은 특별히 야당에게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평론가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면서 다년간의 '강제 훈련'을 받은 덕에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이 정도 예측을 하는 것은 '껌씹기'만큼 쉬운 일이다. 암튼 이번 일 때문에 갈등해결에서도 필수인 '협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협상은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다. 양측이 마주 앉아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당사자들이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매 단계마다 하게 되는 것이 바로 협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해결을 공부할 때는 협상의 기본을 익히고 갈등의 악화나 새로운 갈등의 발생이 아닌 갈등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협상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찌보면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 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원칙이란 바로 왜,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협상을 하느냐를 항상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원칙이 서 있다면 굳이 협상론을 알지 못해도 누구든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협상을 할 수 있다.
협상에 임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하고,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대표하느냐'이다. 자신이 아닌 어떤 집단이나 단체를 대표해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라면 반드시 협상 대표는 자기를 보낸 사람들과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관련해 야당이 대표해야 하는 집단에는 자기 당 뿐만이 아니라 진실을 원하는 유족들과 국민들도 포함된다. 야당의 협상자는 이들을 대표하는 자격으로도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문서에 서명한 것은 아니지만 야당도, 그리고 진실을 원하는 유족들과 국민들도 모두 동의하고 있는 점이다. 그런데 그들과의 소통없이 독단적으로 상대와 협상한다면 대표성은 물론 협상의 정당성도 확보할 수가 없다. 왜, 무엇을 위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협상하는가도 결국 이들과의 소통 속에서 계속 정리되고 재확인돼야 한다. '왜'는 상상을 초월한 참사가 얽히고 섥힌 각종 구조적 문제와 비리 속에서 발생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는 한 마디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자인 유족들이 원하는 수준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목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은 물론 사고의 재발을 막고 근본적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관련된 구체적 내용은 결국 진실 규명을 강하게 외치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확인돼야 한다.
합의와 관련해서도 소통이 무시돼선 안 된다. 문화적으로 한국인들은 협상장으로 보낸 대표가 갖는 권한과 관련해 다소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대표에게는 관례적으로 제법 높은 수준의 결정 권한이 주어지지만, 대표가 맘에 들지 않는 합의를 가지고 돌아오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권한의 범위에 대한 내부적 합의와 합의 승인 여부가 사전에 논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효한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권한과 승인에 대한 내부 정리가 우선돼야 한다. 대표자에게는 소통을 통해 정리되고 확인된 내용과 원칙의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합의 권한이 주어져야 하고, 그 권한을 가지고 합의한 것은 받아들여지고 승인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는 되도록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하고 현장에서 당장 합의하도록 대표자에게 압력을 넣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권한의 범위가 사전에 정해진다면 그런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명분을 가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내부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합의안에 동의하는 실수를 예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표자와 그를 대표로 보낸 사람들 사이의 소통, 권한의 범위, 협상 내용, 승인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소통을 관례나 상식에 맡겨두지 말고 공식적인 절차와 형태로 만들어놔야 한다. 갈등해결 과정을 진행할 때 협상 테이블에 앉는 대표와 그가 대변하는 집단 및 개인 사이의 소통을 위해서는 협상 과정과 병행해서 협상 내용을 브리핑하고 다시 의견을 듣는 내부 과정이 진행된다. 그렇지 않으면 대표성이 유지되지 않고 협상 내용에 대한 내부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전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합의가 야당 내에서는 물론 유족들과 국민들의 거부를 야기한 이유는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험난한 협상을 제대로 되게 만들려면 소통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에 더해 소통을 공식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통을 공식화하는 것은 협상 테이블에 앉는 대표자와 그를 보낸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개인의 판단과 노력, 또는 필요에 따른 선택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틀 안에서 이뤄지도록 논의 구조를 만들어놓는 것을 말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대표가 다수의 집단과 개인을 대변해야 한다면 그들 모두가 포함된 원탁 논의를 진행해야 함을 말한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관련해서도 이런 원탁 논의가 필요하다.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입법기관의 일으므로 정당들이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 협상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위해 관계당사자들의 의견이 수렴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야당, 유족, 생존자 가족, 지지 단체 등을 포함하는 원탁회의의를 구성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야당이나 특정 시민단체가 운영할 수도 있고, 모두가 공동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이렇게 소통을 공식화해야 협상에 대표로 나서는 야당에게 왜, 무엇을 위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협상할 것인가를 시시때때로 확인해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이 배수진을 치고 목숨을 내놓고 진실을 요구하고 있는 유족들이 단식과 농성을 끝낼 수 있게 도와주는 길이고, 장기적인 싸움에 대비한 전략을 짤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길이다. 그렇지만 현재 가장 중요한 도전은 재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여당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내는 일이다. 물론 이것은 야당이 모든 능력을 쥐어짜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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