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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갈등, 막장 드라마의 힘?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4. 4. 12. 00:00
언제부터인가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형편없는 드라마를 일컫는 냉소적인 말로 자리잡았다. 탄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막장'의 진짜 의미와 상관없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이 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언어가 진화를 거쳐 독립적이고 차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됐으니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그냥 쓰기로 한다.
어쨌거나 막장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의 분노 지수를 높이고 욕까지 부르지만 사람을 끄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우리의 안방에 파고들고 있다. 특별히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나 노인들의 심심한 시간을 떼워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작품의 완성도와 속도감이 떨어져 일주일을 보지 않아도 쉽게 내용을 따라 잡을 수 있고, 때로 손발을 오글거리게 하고 속을 매스껍게 만드는 말도 안되는 얘기가 난무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아이들이나 청소년이 아니고 사리분별이 가능하고 인생 살만큼 산 사람들이니 그런 드라마가 사회에 끼칠 악영향 같은 것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하다.
막장 드라마에 반드시 나오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들의 얽히고 섥힌 갈등과 비밀이 막장 드라마의 주요 주제다. 거기에는 출생의 비밀과 신데렐라 이야기가 주 양념으로 가미된다. 막장 드라마의 중심 주제인 가족은 우리 사회의 가족 중심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족이 가장 중요하고 삶의 중심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가장 잘 호소할 수 있는 주제도 결국 가족이 되는 것이다. 가족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와 추억이자 아픈 구석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 투성이의 과거와 현재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불안해한다. 가족이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족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에 피곤해하고 때로는 화병을 겪으면서도 꾸역꾸역 가족 안에 머문다. 그래서 가족 안에는 갈등이 많다. 안보면 그만인데 그럴 수 없으니 이런저런 일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갈등이 막장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되고 시청자들의 공감도 얻는 것이다.
갈등은 기본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관계가 없다면 갈등이 아니라 한번의 말다툼으로 끝날 것이고 그 사건조차 조금 지나면 다 잊혀지고 만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잊혀지지 않고 세월이 지나면서 켜켜이 쌓이게 된다. 깊은 관계가 있고 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 구성원들은 노골적으로 갈등을 대면하고 밖으로 꺼내 놓기를 주저한다. 관계에 금이 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미칠 영향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온전히 갈등에 처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남의 갈등에게 쉽게 관여하게 된다. 결국 갈등은 모두의 일이 되고 만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은 제대로 표현되지도 않고 잘 해결되지도 않는다.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해결을 모색하고 종지부를 찍으면 될텐데 그렇지 않으니 세월이 지나면서 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기 때문에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생생해진다. 그렇게 쌓인 갈등은 한계에 달하면 폭발하게 된다. 가족들이 다 모이는 날에, 명절에, 또는 부모의 생신 때 가끔 갈등이 폭발하고 말싸움이 난투극으로까지 번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가족 안에서 갈등이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이 극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주로 오래 묵은 갈등이 폭발하기 때문에 일종의 한이 표현되는 것이고, 모든 구성원들이 갈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 관여하며, 거기에 도리, 체면, 노릇(가족 내 역할) 등의 문화적 요소가 결합돼 여러가지 판단과 충고의 목소리가 섞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갈등이 폭발했을 때 가장 주목을 받는 사람은 문제를 폭발시킨 사람이다. 흔히 그 사람에게는 온갖 비난이 퍼부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누군가 폭발했다는 것은 수용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는 비난이 아니라 위로와 인정의 말을 해줘야 한다. 사실 그 사람이 바라는 것도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보다 그런 인정과 위로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욕구를 알아채지 못하고 온갖 비난과 충고를 하게 되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모든 가족이 갈등에 휘말려 편을 짜 싸우는 아름답지 못한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뿌리 깊은 가족 역사, 문화, 관계 등과 얽히고 섥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고 견디는 어찌보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화병을 주는 가족 내의 문제와 갈등을 묵인하거나 봉합하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적어도 누군가가 힘들어하고 있음을 그 상대도 알 수 있게 해야 하고, 가족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모색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은 삶의 안식처가 아니라 족쇄가 되고 말 것이다. 누군가의 상처와 화병을 외면하고 혈연만을 내세우며 가족의 결속을 강조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말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생각할 때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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