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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시민, 종교단체의 역할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4. 3. 24. 00:00
어제 오후 몇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난 카페인 때문에 코코아를 마셨지만) 얘기를 나눈 후 집에 오면서 갈등과 관련해 시민단체와 종교단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글을 통해 한번 더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런 '커피 한잔과 잡담'의 주요 내용은 최근 몇 년 동안 사회를 뒤흔들었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 굵직한 갈등과 관련한 것이었다. 며칠 전 블로그에 쓴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은?'이라는 글과도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별히 시민단체와 종교단체가 영향력 있는 외부자로 갈등에 관여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 특별히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고민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주제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단체는 풀뿌리 차원보다는 전국과 지역 차원에서 일하는 단체를 말하고, 종교단체 또한 개별 종교 공동체, 그러니까 동네나 마을에 있는 교회, 성당, 절보다는 그런 종교 공동체들이 연합해 만든 기관이나 그들이 사회 현안을 다루기 위해 만든 시민단체 성격의 단체들이다. 이런 시민, 종교 단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약자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고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정책, 법률, 제도, 이익 집단 등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종교적 가치를 사회에서 구현시키는데 관심을 둔다.
시민, 종교 단체들이 갈등을 만들거나, 기존의 갈등에 개입하거나, 때로는 문제를 사회와 공유하기 위해 갈등을 확대시키기까지 이유는 특정 문제나 갈등으로 인해 약자가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그로 인해 사회 정의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일을 다루는 것이 시민, 종교 단체의 역할이라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관여할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또는 좀 줄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시민, 종교 단체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실무자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사생활까지 팽개치듯 살아야 하는 참 특이한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쨌든 우리 상황에서는 시민, 종교 단체가 옆 동네 불구경하듯 무심하게 사회에서 불거지는 갈등을 지나칠 수 없는 형편이고 그런 상황을 만든데에는 시민들의 수준과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행정 체계와 접근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든 갈등이 아니더라도 관여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갈등과 시민, 종교 단체의 역할, 또는 바람직한 역할'이라는 특별한 주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바람직한 역할'이라는 것은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시민, 종교 단체에 요구하는 역할도 결국 '바람직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
시민, 종교 단체가 갈등에 관여하게 되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도 아주 흔하다. 시민, 종교 단체는 자신이 가진 또는 내 세우는 정체성 때문에라도 공공성을 훼손하는 갈등에 침묵할 수는 없다. 이들이 갈등에 외부자로, 또는 갈등 당사자로 관여하게 되는 경우는 주로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시민, 종교 단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대중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갈등을 만들어 공공성이 담보되고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도록 갈등을 압력의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공동체 또는 지역 단위에서 발생한 갈등에 시민단체가 관여해 현지 사람들과 결합하게 되는 경우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시민, 종교 단체가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순간부터 이목이 집중되고, 대상이 되는 문제가 정치 사회 현안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시민, 종교 단체가 가진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이유다.
특별히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경우는 시민, 종교 단체가 이미 발생한 갈등에 연대 차원에서 결합할 때이다. 사실 시민, 종교 단체가 주도적으로 만든 갈등은 정책 감시나 제안을 위해 캠페인이나 운동 형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시민들은 거기에 참여를 할뿐 갈등 당사자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연대하고 적극 결합하게 되는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갈등에 직접 관계된 공동체나 시민들은 시민, 종교 단체가 가진 영향력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시민, 종교 단체의 연대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찌보면 이것은 전략적 연대인 셈이다. 시민, 종교 단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고, 공동체나 시민은 자신의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일반적으로 전략적 연대는 자신의 이익만 따져 연대를 계속 또는 중단하면 된다. 그런데 시민, 종교 단체 입장에서는 이것을 계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들에게 이익이라는 것은 사회 정의를 이루는데 한 몫을 했냐는 것인데 그것을 판단, 평가하는 기준이 참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 시민들과 시민, 종교 단체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지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시민들의 시각이 반영된 '바람직한 역할'을 얘기하는 이유는 시민, 종교 단체들이 자신의 이익보다는 사회 전체, 특별히 약자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일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등과 관련해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논의는 결국 시민의 이익에 더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먼저 공동체나 시민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갈등에 관여하는 시민단체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본다면, 시민단체는 일관되게 갈등에 관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봐야 할 것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문제 제기 차원에서 갈등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갈등에 관여하게 된 우선적 이유가 시민단체로서의 정체성, 가치관, 도덕성, 신념, 정치적 입장 등 자신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면 그 목적에 맞춰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나 시민을 지원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그것이 시민단체로서의 정체성, 가치관, 신념 등등과 모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면 갈등의 전개와 해결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공동체와 시민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비록 그들의 선택이 근시안적이고,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지 못하며, 공공의 이익과 어긋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초점을 맞출 뿐이고 언제나처럼 구조적 모순과 공공의 이익의 문제는 시민단체가 골 아프게 고민할 문제다. 어찌보면 이것이 시민단체에게는 가장 힘든 일일 것이다. 사실 평화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점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평화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갈림길에 섰을 때 당사자의 선택을 절대 존중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평화 연구자들이 대체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민단체가 깊이 성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시민단체의 관여 이후 갈등이 전개되는 방향과 자신들의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공동체나 시민들이 시민단체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저항 내지 갈등을 전개시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 점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갈등에 시민단체가 연대하게 되면 모든 언론과 공공기관의 관심이 시민단체에 집중되고 정작 공동체나 일반 시민들, 그리고 그들의 생활 현안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물론 그것이 시민단체가 의도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결국 공동체와 시민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시민단체는 그런 방향을 수시로 점검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공동체 및 시민들과 함께 그런 현실적 한계를 고민하고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최후에는 공동체와 시민이 갈등이 더 이상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마음을 돌릴 수도 있다. 배신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현재와 미래의 삶을 생각할 때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시민단체는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 갈등을 통해 정부와 정책에 저항하는 것은 시민단체에게는 선과 악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갈등에 목숨을 건 것처럼 보이는 공동체와 시민들에게 갈등은 오히려 삶의 한 과정이고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방법이므로 당연한 선택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평화 연구자인 나로서는 이런 경우 공동체와 시민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종교단체의 '바람직한 역할'은 시민단체의 경우보다 과격해야 한다는 것이 종교를 가진 나의 생각이다. 과격해야 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공동체와 시민을 중심에 놓아야 하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생각이 다르더라도 어느 한 쪽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단체가 어느 한 쪽을 편들고, 다른 한쪽을 팽개친다면 그것은 종교단체로서의 정체성과 명분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단체가 갈등에 관여하는 이유도 기본적으로는 시민단체와 다르지 않게 사회 정의를 이루고 약자를 편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종교단체가 갖는 차별성은 약자뿐만 아니라 잘못된 강자도 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쉬지 않고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잘못을 바로 잡는 과정에서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이 종교의 근본적 가르침이고 신념이며 미덕이다. 더 나아가 종교단체는 항상 가까운 미래에 직면할 화해의 문제를 염두에 둬야 하고 화해의 과정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까지 미리 고민해야 한다. 그것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종교나 종교단체는 스스로의 품성과 자질을 심각하게 성찰해봐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 굵직했던 갈등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종교가 차별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 정의와 약자의 권리 보호와 관련해 종교단체는 시민단체가 하는 역할 수준을 뛰어 넘지 못했고, 결국 시민단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차별적 역할을 기대하는 사회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특별히 갈등이 지나간 후 화해와 관련해서는 가장 중요하고 바람직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종교단체다. 화해는 법과 제도로 규정된 일만 하는 행정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각자 전문 영역이 있는 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종교단체는 평화로운 공존의 사회를 위해 모두를 껴안고 모두를 위해 일해야 할 당위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갈등에 직접,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종교단체가 이 부분을 고민하면서 공동체 및 시민들과 연대한다면 갈등에 대한 접근과 전개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갈등이 전환점에 달하고 공동체와 시민들이 새로운 선택의 길목에 도달했을 때, 또는 화해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을 때 그들이 원하고 종교단체로서의 정체성에도 부합하는 정말 '바람직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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