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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개혁 갈등과 구조적 폭력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4. 3. 10. 00:00
정부가 제시한 의료 개혁안을 놓고 복지부와 의사협회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의협은 전면 집단 휴진을 경고했고 그에 대한 몸풀기 격인 하루 집단 휴진을 오늘(3월 10일) 감행했다. 기사를 통해보면 평가는 엇갈린다. 전공의들까지 참여한 것에 고무된 의협은 높은 참여율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복지부는 전국 동네병원의 참여율이 29.1%에 그치고 있다며 집단 휴진의 의미를 평가절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직접 영향을 받는 이익집단 중 하나가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갈등은 마치 복지부와 의료계의 갈등인 것처럼 보인다. 복지부와 의료계는 이미 한 차례 양자 대화를 했고 둘이서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의료계가 양자 대화의 결과를 받아들 수 없다고 하면서 갈등은 고조되고 현재의 위기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것은 복지부와 의료계가 양자 대화에서 합의점을 찾았다면 복지부가 정책을 밀고 나갔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어쩌면 정부와 복지부가 진심으로 바랐던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랬을 경우 다른 갈등이 불거졌을 것이다. 바로 복지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다수 시민과의 갈등이다. 현재 갈등이 복지부와 의료계 사이의 대립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시민과 시민단체의 저항은 전면에 부상되지 않고 잠재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의료 서비스는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므로 이번 의료 개혁의 갈등이 절대 두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번 갈등에서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이다.
현재는 의협과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연합인 범국민운동본부가 복지부의 의료 개혁안에 반대하면서 같은 입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보면 원하는 것은 다르다. 의협은 의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이므로 자신들의 이익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의료 법인 영리화와 원격 진료 문제도 서비스 이용자인 환자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해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의료 수가 인상 문제가 결합돼 있다. 사실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범국민운동본부는 의료 영리화가 결국 건강보험의 역할을 점차 약화 또는 고사시키고 전면적인 의료 민영화로 가는 길이 아닌지를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 서비스가 공공 서비스가 아닌 이익 창출 산업이 되고 그에 따른 피해가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한다. 한편 정부와 복지부는 의료 서비스를 공공 서비스의 역할보다는 산업의 역할을 강조해 발전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공 서비스 역할도 유지해야 하므로 의료계에게는 의료인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정부 & 복지부, 의료계, 국민 & 범국민운동본부 모두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고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이번 갈등에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의료 서비스는 어느 사회에서건 가장 중요한 공공 서비스 중 하나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국가가 공공 서비스로써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느냐 못하느냐는 평화 연구의 시각에서 보면 구조적 폭력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구조적 폭력은 사회의 법, 제도, 체계, 실행 기관 등이 구성원들을 억압함으로써 잠재성의 발휘를 가로막는 것을 말한다. 구조적 폭력은 당장 목숨을 빼앗거나 신체적 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삶의 질을 낮추고 결국에는 생명을 앗아간다. 사회 구성원들의 접근성을 저해하고 필요를 외면하는 의료 서비스는 바로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때문에 구조적 폭력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많은 종류의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돼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를 외면할 경우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정책 변화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추가로 이해되곤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의료 서비스 헤택의 양극화가 많이 진행돼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 서비스 정책의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삶, 생명, 안전, 삶의 질에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의 맥락에서 엄중하게 분석돼야 한다. 비록 전문적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나아가 두려워하는 것 또한 자신이 그런 폭력적 구조에 희생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어느 누구도 자신이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적 폭력은 단순히 온기가 없는 법, 제도, 체계, 실행 기관 등이 아니라 그것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 가해지고 의료 서비스 문제 또한 관련된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선회하면 얼마든지 구조적 폭력이 될 수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이미 그런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의료 서비스 문제를 폭력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은 물론 평화 연구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한쪽으로 기운 분석과 이해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엄중한 시각으로 이번 문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갈등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갈등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복지부와 의협의 양자 협상과 합의로 갈등을 일단락시키는 것이다. 두 당사자가 자신들의 이익 외에도 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의료 서비스의 공공 서비스 역할 유지 또는 강화, 현재 건강보험 체계의 유지 또는 강화, 의료 혜택의 양극화 해소 등에도 초점을 맞춰 문제를 종식시킨다면 물론 딴지를 걸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절대 높지 않다. 그러므로 두 당사자가 자신들의 이익에만 맞춰 문제를 일단락시키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고, 나아가 시민과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런 후 정부와 복지부, 의료계, 국민들 모두가 당면한 도전과 현실적 어려움을 타개할 논의를 통해 갈등의 근본적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로선 의협의 집단 휴진을 막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후에는 장기적 의료 개혁안을 같이 논의하는 방향으로 문제해결 방향을 선회시켜야 한다. 이것은 갈등을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재발을 막고 의료 서비스의 사회적 역할과 의무에 대한 공동의 이해와 비전을 만들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이번 갈등에 관계된 세 당사자 집단은 서로 입장과 이익이 상반되기도 하고, 일부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마다 해결해야 할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어려움은 각자의 주장을 밀고나가는 것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현안이 사회 전체가 관련된 것이고, 어떤 갈등의 경우보다도 당사자들이 서로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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