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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 공공기관의 갈등 접근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4. 9. 19. 00:00
대한민국을 '갈등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단순 과장된 이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갈등 연구자의 시각에서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살다보면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특별히 우리 사회에는 갈등이 많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하나는 제대로 해결되는 갈등이 없다보니 계속 축적만 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피할 수 있거나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이 악화되고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원인은 사회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갈등에 대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접근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공공 갈등이다. 공공 갈등은 정부와 공공기관의 정책 및 행정과 관련해 발생하는 갈등을 말한다. 사실 공공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고, 공공 갈등의 존재는 민주주의가 최소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공공 갈등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분명 문제다. 공공 갈등이 많아지는 주 요인은 정부와 공공기관의 문제적 태도 때문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자신이 중립을 지켜야 할 갈등에 쓸데없이 관여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적극 관여함으로써 갈등을 만들고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5년 연한만을 부여 받은 정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정치적, 이념적 입맛에 맞게 사회를 통제, 재단하려 하고, 공공기관은 독립성을 가지지 못하고 해바라기처럼 정부의 지시 방향에 따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갈등은 당사자들 사이의 순수한 갈등이 되지 않고 정치적 사건이 되거나 이념 대립이 되곤 한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일정 기간 전개 과정을 거친 후 당사자들 사이에 해결이 모색됐을 갈등도 정치 현안으로 변질돼 악화일로를 걷게 되고 해결이 요원해지곤 한다.
사회 갈등의 발생에 가장 많이 '기여'해오고 있지만 사실 정부와 공공기관은 갈등에 관심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겠지만 우리 정부가 갈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한 것은 참여정부 때부터다. 시작 초기부터 참여정부는 각종 사회 갈등을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수용될 수 있는 적절한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다른 선진국들에서 적용되고 있는 당사자 중심의 갈등해결 모델, 다시 말해 당사자들이 직접, 또는 전문적인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갈등을 해결하는 모델을 연구하고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정부는 꾸준히 갈등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를 운영해오고 있다. 참여정부 때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때는 사회통합위원회가 그 임무를 담당했으며, 현 정부 하에서는 국민대통합위원회가 그 일을 맡고 있다. 공공기관에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정책은 실행 전에 미리 분석을 하고 갈등을 예방,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공공기관의 이런 접근은 가시적인 효과를 거의 내지 못했고, 그러니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일정 부분의 세금은 항상 갈등에 대응하고 갈등을 잘 해결하는데 쓰이고 있는데 사회 갈등, 그것도 정부와 공공기관이 관여된 공공 갈등은 계속 늘어난다? 이것 너무 큰 모순이 아닌가.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리적, 독점적 접근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인 '갈등해결'이 아닌 '갈등관리'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좀 복잡하고 전문적인 전공 관련 애기지만 '갈등해결'은 무장 갈등부터 개인 갈등에 이르기까지 '갈등을 당사자들이 직접 (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고, '갈등관리'는 갈등이 확대되거나 파장이 커지지 않게 하는 범위 안에서 관리하면서 당사자들이 해결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해결이 일반적 용어고 가장 바람직한 접근이지만 갈등관리도 잘 적용되면 아무 노력도 안하는 것보다는 배 배, 천 배 낫다. 두 가지 접근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의 속을 들여다보면 용어로 인한 차이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차이가 날 수도 없다. 정부와 공공기관 내에 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전문적으로 전공, 연구한 사람들이 거의 없고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예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갈등해결이란 용어를 써도 이런 환경에서는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꼭 용어 탓은 아니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이 갈등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관리하고, 자신이 독점적으로 다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사자들이 갈등을 다룰 수 있게 장을 열어주고, 자신도 당사자의 하나로 겸허하게 과정에 참여하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는 완전 다르다. 우리의 정부와 공공기관은 자신에게 유리한 틀을 미리 만들어 놓고 정부와 공공기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당사자들에게 그 틀 안으로 들어올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즉 다른 당사자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틀은 거부하고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 때문에 갈등이 갈등을 낳고, 대결이 대결을 낳는 상황이 반복된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리적, 독점적 접근 때문에, 그리고 그에 더해 자신의 틀을 거부하는 개인과 집단은 배제하는 배타적 접근 때문에 1년 365일 대한민국에는 각종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시민들은 효율적인 저항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거리 집회에 쏟아부어야 하고, 가족 및 친구와 보낼 수 있는 단란한 여가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 '창조 경제'를 외치는 시대에 이 무슨 '비창조적인 일상'인가 말이다.
결론은 사회 갈등이 늘어나는데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태도와 접근이 가장 큰 문제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정부와 공공기관 욕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이 그런 태도와 접근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이해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와 공공기관 내부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지 못하고, 그래서 실질적인 대응 역량이 키워지지 않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정부와 공공기관의 갈등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몇 사람은, 또는 몇 집단은 적극적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이 제시하는 틀을 탐색하고 필요하다면 안으로 들어가 내부로부터 그것을 깨고 새로운 틀을 만드는 연구와 접근을 해야하지 않을까. 이런 일은 기본적으로 자기 영역을 뛰어넘어 사방팔방으로 영역을 넓히는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자기 편으로부터 회색분자로 취급받을까봐, 자신의 신념이 흔들릴까봐, 상대편이 자기 편으로 오해할까봐, 또는 박쥐형 인간으로 취급받을까봐 등등 이런 저런 걱정 때문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 가치관, 이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분명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자원을 찾아내고, 훈련시키고, 독려하는 것도 집단 지성의 시대에 다양한 활용 자원을 만들어내는 길일 것이다. 애매모호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면 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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