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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잠재적 대상으로 산다는 것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9. 3. 14. 10:36
여자로 살기 힘든 세상
잘 나가던 연예인의 이중생활이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경악했다. 주변 남자들과의 은밀한 대화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추잡하고 반윤리적이고 반인권적이며 반인도적이었다. 그들은 만나는 여자들을 자신의 만족과 놀이를 위한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밝혀지자 많은 남자의 시선은 피해자들에게 향했다. 특히 연예계에 있는 피해자들을 찾으려고 혈안이 됐다. 걱정하고 보호해주려는 것이 아니다. 가십거리로 소비하고 킥킥대며 품평을 하기 위해서다. 어떤 몹쓸 사람들은 동영상까지 찾는다고 하니 이중생활을 한 연예인과 같은 부류의 남자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여자여서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심심찮게 있었다. 특히 혼자 낯선 곳을 여행할 때 그렇다. 여행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세계의 제법 많은 곳을 다녔다. 대부분은 혼자하는 여행이었다. 혼자 여행할 때 가장 신경써야 하는 것은 안전이다. 멋모르고 다니던 30살에 위험할 뻔했던 경험을 하고난 후 생긴 습관이다. 호텔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잡아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밤에 돌아다닐 수 있다. 택시를 탈 때도 기사가 남자라면,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도 남자라면 경계해야 한다. 한 번은 호텔의 불친절 때문에 항의를 했는데 술취한 지배인이 "그럼 방에 가서 보자"고 해서 내방으로 같이 가다가 문앞에서 "됐다"고 말하고 그만뒀다. '아차...'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늦은 밤에 택시를 타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지방 강의를 한 후 올라와서 새벽에 장거리 택시를 타는 것이 무서워 첫차가 다닐 때까지 2시간 넘게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요즘엔 도촬을 찾아내기 위해 곳곳에서 숨겨진 카메라를 탐색하는 여자들도 많다. 밖에서는 되도록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는 경우도 있다.
모르면 배우기라도..
성관계를 몰래 촬영하고 공유한 연예인 사건을 보면서 모든 여자들은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다. 비슷한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게 어떤 느낌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인정받는 당당한 사회인이 되도 그런 섬뜩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억지로 공감할 필요는 없다. 그냥 마음으로 몸으로 느껴진다.
좀 궁금했다. 왜 남자들은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공감하지 못할까. 왜 굳이 '내 동생이라면, 딸이라면..."같은 전제를 달아 공감을 표시하는 것일까. 겉모습으로 구분했을 때 세상의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인데 왜 같은 인간으로 공감하지 않을까. 나름 내린 결론은 여자의 상황에 처해보지 않아서, 실제 경험해보지 않아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자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섬뜩함과 분노가 아니라 이성을 동원해 걸러낸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설명을 덧붙인다. 이 또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어떤 남자들은 그런 반응을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 주장하고 그런 냉정한 반응을 여자들에게도 강요한다. 절대 논리적이지 않는 데 말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폭력의 잠재적 대상으로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서 기인하는 차이인데 말이다.
여자들의 분노와 공포를 이해할 수 없으면 노력해서 배우기라도 해야 한다. 자신이 마피아가 들끓는 도시에 살면서 항상 공격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보라. 어디를 가도 항상 경계하고 안전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상을 산다고 생각해보라. 그렇게라도 머리로 익히고 감정을 배워서 공감력을 높여야 한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여자들은 피해자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날것의 공감과 진심으로 가해자에게 분노를 쏟아내주는 남자 사람 동지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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