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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초 10 평화교육, 평화로운 세상의 토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9. 5. 14. 09:53
사람과 관계의 문제를 다루는 역량의 필요
평화는 추상적인 주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쟁과 다툼부터 곳곳에서 일어나는 부정의와 착취의 문화까지 다양한 삶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 그러므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고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선언이나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그들의 역량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평화교육이다.
단언하건데 평화교육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그리고 평화교육을 하는 조직이나 사회와 하지 않는 조직이나 사회는 분명히 다르다. 그 다름은 거시적, 전략적 정책의 결정과 실행부터 사람들 사이 관계 형성과 문제 해결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나타난다. 평화교육을 받은 사람은 미움, 대립, 싸움이 아니라 이해, 대화, 협력을 통해 공존할 방법을 고민하고 나아가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잠재성을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 목표만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관계의 문제를 민감하게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된다.
평화교육은 크게 가치, 태도, 행동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가치의 변화는 어떤 상황에서든 평화를 중심에 두고 평화로운 세상과 평화적 공존을 삶의 최우선이자 궁극적 목표로 삼는 것을 말한다. 태도의 변화는 사람과 문제를 보고 대하는 시각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경쟁, 배제, 승리를 위한 비난이 아니라 협력, 참여, 공존을 위한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문제의 관계, 그리고 구조의 영향 등을 포괄적으로 보는 시각으로의 변화가 포함된다. 행동의 변화는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 직면한 상황과 문제를 평화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변화의 계획을 세운 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주도가 아니라 다양한 당사자들과 함께 하는 평화 노력으로의 변화가 포함된다.
체계적, 지속적 평화교육의 필요
평화교육은 다양한 곳에서 여러 방식으로 계획되고 실천될 수 있다. 한 번의 토론과 활동부터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교육과 학위 프로그램까지 모두가 평화교육이 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평화교육에서 기본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교육을 받는 사람의 수준과 필요에 맞춘 것이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참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먼저 평화교육이 평화의 가치와 태도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은 곧 폭력이 될 수 있다. 또한 강요를 통해서는 가치와 태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는 평화교육이 행동의 변화, 다시 말해 실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문제를 규명하고, 분석하며, 재해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같은 이유로 교육을 받는 사람의 수준과 필요에 맞춰 내용과 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평화교육은 평화의 가치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공감대와 공동의 목표를 찾고 함께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변화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평화교육은 다른 교육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참여적인 방식으로 계획되고 실행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평화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폭력적 상황과 필요한 평화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다. 가장 아쉬운 점은 체계적인 평화교육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일회성, 또는 몇 차례의 정보 제공 수준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행사 위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은 일시적 깨달음과 감동을 줄 수는 있어도 가치와 태도의 근본적 변화까지 만들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이미 시도됐거나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평화교육이 남북문제 및 통일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중요한 평화 현안 중 하나는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의 정착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그 외의 평화와 폭력 현안이 무수히 많다. 그러므로 평화를 남북문제와 한반도 평화 문제에 가두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에 답하지 못하는 것임과 동시에 평화와 공존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한반도 평화와 공존의 문제도 사실은 보편적 평화를 이해하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상황과 문제를 평화적 시각으로 해석할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평화의 성취는 어떤 폭력도 존재하지 않는 적극적 평화로 한발 한발 꾸준히 전진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과 그들의 역량과 헌신이 필요하다. 사람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꾸준히 노력하고 독려하고 모아야 얻어진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작이자 과정이 바로 평화교육이다. 그런 점에서 평화교육은 평화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토대이다.
* 위 글은 서울 YWCA의 월간지 <서울YWCA>의 '우리가 꿈꾸는 평화세상' 연재를 위해 기고한 글이며 잡지가 출판된 이후 여기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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