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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불매운동과 정의 실현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9. 7. 18. 14:32
A급 전범까지 신격화한 야스쿠니 신사
불매운동의 함의
일본산 불매운동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사회적 캠페인이자 시민운동이 됐다. 보통의 시민운동은 시민단체나 활동가가 먼저 나서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의 경우는 운동가들이 아닌 일반시민들이 나서고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민들이 불매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하나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의 과거 잘못을 단죄하고 배상을 요구한 것에, 그것도 정부가 아닌 개인이 힘든 법절차를 거친 후 나온 결정에 대해 일본 정부가 나서 비난하고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이 위안부합의의 실질적 파기 문제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심이 들지만 그 또한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짓밟은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말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한국 정부와 시민은 정의의 문제로 본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은 단순한 경제 문제로 보거나 한국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부당한 요구에서 비롯된 문제로 본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고초를 당한 개인에 대한 인간적 공감이나 인류애적 이해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일본의 역사 인식과 교육이 엉망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많은 일본인들의 태도와 행동은 아주 유감스럽게도 너무 뻔뻔하고 비윤리적이다.
불매운동은 단순히 경제 보복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 아닌 국제사회에서의 정의 실현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일본, 나아가 아시아와 국제사회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잘못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뭇매를 맞았고 지금도 계속 맞고 있다. 미국은 유명세와 가진 힘만큼 국내와 세계의 감시를 받고 있는 셈이다. 다른 선진 강대국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는 국가지만 일본의 과거 잘못을 세계인들은 잘 알지 못하고 감시도 이뤄지지 않는다. 일본 내 감시세력도 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과 한국 시민의 불매운동은 국제사회에 일본의 과거 잘못을 고발하고 과거사 처리 방식에 대한 감시를 촉구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불매운동은 우리가 한국사회를 넘어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을 위해 현재 상황에서 선택된 방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 여러 해석이 존재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불매운동을 경제적 시각으로만 보고 좁게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시민이든 언론이든 정치인이든 그 누구든 말이다.
정의, 공존을 위한 전제 조건
정의는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한다고 해서 홀대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정의는 우선적으로 피해자를 위해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 가해자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정의의 실현은 잘못의 규명과 처벌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공동체나 사회의 인정받는 일원으로 복귀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제징용 문제든 위안부 문제든 당사자들과 많은 한국 시민이 일본 정부와 기업을 향해 진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에게는 과거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과 같다. 나아가 그것은 일본이 당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정의 실현의 중요한 또 다른 역할은 관계회복에의 기여다. 이번 사건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얼마나 불안하고 얕은지를 다시 보여줬다. 양국의 이런 관계는 해방 이후 계속되고 있다. 진정한 관계 회복은 정의 실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일본이 아무리 부인하고 거부하고 저항해도 말이다. 정의의 실현 없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다. 그리고 관계 회복은 양국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
정의의 실현은 궁극적으로 공존을 위한 것이다. 물론 정의의 실현 없이도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과 교류하며 살아 왔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그것은 적극적인 공존의 선택이 아니라 지리적 조건과 경제적 상황에 기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의의 실현 문제가 계속 목구멍의 가시처럼 걸려 있었지만 박정희가 저지른 한일협정의 굴레가 계속 우리를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랜 세월 정의를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그러나 정의의 문제는 이제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됐다. 그리고 그 정의는 단순히 당사자들과 우리 모두의 한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한.일 관계를 회복하고 양국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됐다. 무엇보다 정의는 일본인들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한 국가가 경제력만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는 없는 세상이다. 물론 일본 정부나 대다수 일본인들은 이 점을 인식하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세계와의 평화적 공존이 아니라 경제력에 기댄 힘의 관계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와 일본 모두를 위해 세계시민으로서 우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 불매운동은 그런 역할을 위해 현재 우리가 선택한 하나의 노력이라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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