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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초 9 '함께'를 위한 문제해결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9. 2. 19. 14:20
'함께' 만드는 평화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평화는 한 번의 사건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평화를 만들고 유지하고 점진적으로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다. ‘함께’해야 꾸준히 평화를 향해 전진할 수 있으며 도전적 상황을 돌파할 공동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함께’는 두 가지 점에서 정당성과 당위성을 가진다. 하나는 공동체, 사회, 국가 등이 원하는 평화의 모습과 구체적인 내용은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에 의해 정의돼야 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삶과 연결지어 평화를 어떻게 이해할지, 어떤 분야에서의 평화가 먼저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평화를 먼저 얘기해야 하는지, 공격과 싸움을 끝내고 평화로 가기 위해 누구를 참여시켜야 하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합의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는 내용이 없이 모호해지고 결국 선언에만 그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구체적 모습과 내용에 대한 모두의 합의가 없으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평화도, 그리고 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에서는 목표의 달성보다 평화를 위해 가는 꾸준한 과정이 핵심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함께’가 간과되고 외면되면 평화는 오염되고 왜곡될 수 있다. 특히 소수의 힘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 평화를 핑계로 다른 사람들에게 굴복이나 포기를 요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효율성과 성과를 주장하면서 말이다.
평화의 성취와 관련된 담론과 실행이 소수의 힘 있는 개인과 집단에 의해 장악되고 그들을 위한 평화로 왜곡되고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평화적 문제해결이다. 모두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견과 문제 제기를 환영하고, 대립과 충돌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지 않고 공동의 문제로 삼아 대응하며, 무엇보다 이견과 문제의 발생을 비정상적으로 보지 않고 함께 가기 위한 정상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바로 평화적 문제해결이다. 많은 공동체와 사회가 흔히 평화를 선언하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평화적 문제해결은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보통은 개인과 집단의 선택과 대응의 문제로 남겨둔다. 그러나 문제에 직면했을 때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원칙과 실행의 존재는 평화문화의 형성과 정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개인과 집단의 평화 의지와 능력을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평화에 대한 선언과 주장은 있지만 이견과 문제가 생겼을 때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절차가 없다면 평화 성취를 위한 의지와 노력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함께'를 위한 평화적 문제해결
평화적 문제해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접근은 개인과 집단 사이 대립과 충돌이 생겼을 때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듣기 위한 자리를 만들기도 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책임을 묻기 전에 구조와 문화 등의 근본원인을 탐색하고 그것이 개인과 문제에 미친 영향을 살피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구조와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다툼, 대립, 충돌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우가 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립과 충돌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싸움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문제나 다툼이 생겼을 때 책임질 사람을 먼저 찾거나, 혹은 당사자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치하거나 압력을 넣는 일이 많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함께 원인을 탐색하고 함께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평화를 향해 가는 과정의 구성요소 중 하나가 된다. 무엇보다 평화적 문제해결을 통해야만 평화 성취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관계, 문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평화적 문제해결과 관련해 더욱 중요한 것은 대립과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을 체계화하고 수평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소통의 체계화는 일상적으로 이견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체계와 절차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수평적 구조는 소수에 결정 권한을 집중시키고 다수를 배제하는 구조가 아닌 모두의 참여를 보장하고 목소리를 경청하며 결정 권한을 분배 내지 공유하는 구조를 말한다. 소통의 체계화와 수평적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묻고 듣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평화로 가는 과정의 중요한 순간마다 평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평화를 위해 함께 가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기고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일은 그런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부정적 태도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이고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화’와 모순된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견을 조율하며 대화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평화적 문제해결은 그러므로 평화를 위한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 위 글은 서울 YWCA의 월간지 <서울YWCA>의 '우리가 꿈꾸는 평화세상' 연재를 위해 기고한 글이며 잡지가 출판된 이후 여기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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