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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왜 평화문제인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8. 12. 13. 10:13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
최근 프랑스에서 계속되고 있는 시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외신을 보면 그 안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심지어 외국인 배척을 주장하고 극우주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조직들도 살짝 숟가락을 얹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애초 시위가 시작된 배경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시위의 핵심 주제는 갈수록 궁핍해지는 삶의 문제다. 시위를 촉발시킨 영상을 만든 50대 여성은 유류세 인상 때문에 결국 차를 운전하지 못하게 된 자신의 상황을 얘기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 선진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프랑스 시위는 두 가지 점에서 특별히 흥미롭다. 하나는 세계 최고 선진국 중 하나에서도 가난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결국 부의 불균등한 분배 내지 소극 양극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부의 불균등 분배와 소극 양극화를 얘기하자면 우리나라를 빼놓을 수 없다. 전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11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에 의하면 3분기 상위 20%의 월 평균 소득은 974만 5700원으로 8.8% 증가했다. 그러나 하위 20% 가계의 월 평균 소득은 131만 7600원으로 7.0% 감소했다. 빈부 격차는 11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그런데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격차는 더 심하다. 12월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득 10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에 따르면 3분기 소득 하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85만 7396원으로 지난 해 3분기보다 11.3%나 감소했다. 1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반면 상위 10%의 소득은 전년보다 9.02%나 상승해서 1180만 114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100만원을 넘어섰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차는 13.7배다. 숫자로 보면 별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최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 최하층의 수입으로 살 수 있는 것과 누릴 수 있는 삶을 생각하면 '가난' 외에 설명할 말이 없다.
이제 가난은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헐벗고 얼굴이 홀쭉해지지는 않는다. 쌀수록 칼로리가 높은 먹거리와 넘쳐나는 싼 입을거리로 만들어진 소비의 계급화로 인해 이제 겉모습으로 가난해진 삶과 만성적 가난을 판단하기는 힘들다. 겉모습은 당당해 보여도 가난의 언저리에 내몰려 있거나 만성적 수입 부족으로 발전된 사회의 다양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매일 생계만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리고 풍족한 사회에서 배제된 삶, 이것이 바로 21세기 가난한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안에는 분노가 쌓여가고 있다.
가난, 구조적 폭력의 문제
가난한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가난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고 구조의 문제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누군가 가난한 이유는 게으르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지는 세상이다.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부가 제대로 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빼앗아서 부자들에게 안겨주기 때문에 소득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세상이다. 정부도 기업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값싼 노동의 제공을 강요한다. 결국 가난한 자가 정당하게 가져가지 못한 부분이 그들의 이익이 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지금의 가난은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직업이 있어도 가난하고, 괜찮은 직종에 있어도 가난하다. 비정규직은 대기업에서 일해도 가난하고, 시간강사는 대학에서 강의해도 가난하다. 프랜차이즈 가게를 가지고 있어도, 하청업체를 운영해도 가난하다. 그들이 자질을 갖추지 못했거나 일을 못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재벌, 기업, 최고관리자 등의 이익을 위해 사회가 다수를 착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법과 정책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가난은 평화문제가 됐다. 가난한 상태를 만드는 사회 구조가 폭력적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연구의 시각으로 보면 가난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고 폭력의 문제다. 동시에 가난의 확산은 집단 사이 대립을 야기하기 때문에 평화적 공존을 해치는 문제기도 하다. 프랑스 시위는 그 단면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난은 인간필요(human need)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이 인정받고 목소리가 정책 결정에 포함되는 것이다. 가난한 삶을 끝내고 싶은 욕구와 함께 평범한 노동자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인정받고 안전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아니어도 잘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이런 인간필요가 계속 억압되면 프랑스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저항하고 부자와 빈자,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정부와 시민 사이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갈등과 충돌은 쉽게 중단되지 않는다. 인정받고 안전하게 살기 위한 것을 포기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평화강의를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가난의 문제다. 특히 자신의 가난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가난은 아주 민감한 주제다. 가난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처럼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그곳이 대한민국이든 프랑스든 인도이든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고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자 문제고 나아가 폭력의 문제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폭력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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