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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초 5 기후정의와 기후평화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8. 9. 12. 09:43
이상 폭염, 인간이 만든 재앙
여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짧은 장마로 인해 이번 여름의 무더위는 다른 해보다 일찍 시작됐다. 물론 여름은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 이제 거의 5개월이 여름이고 이런 변화가 언제 시작됐는지 확실히 짚기 어렵다. 그러나 긴 여름에 모두가 익숙해졌다.
긴 여름과 함께 변한 것은 또 있다. 늘어난 폭염과 열대야 일수, 짧은 장마, 집중 호우 등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고 첨단 장비를 갖춰도 날씨는 가장 예측하기 힘든 일이 됐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 앞에 속수무책이 됐다.
올 여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다. 7월 중순 호우 피해를 입었던 일본에는 그 직후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찾아왔다. 7월 서시베리아에는 일주일 이상 30도가 넘는 날이 이어졌고, 여름에 비교적 시원한 영국,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도 31-34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를 겪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데스 밸리는 52도, 로스엔젤레스는 45도를 넘겼다.. 사하라사막 지역도 최고 온도를 갱신했고,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우아르글라 지역은 51.3도를 기록했다. 오만의 쿠리야트는 낮 기온이 50도에 육박했고 한밤중에도 42.6도를 나타내 최악의 열대야를 기록했다.
세계 곳곳의 폭염은 열돔(heat dome) 현상에 의한 것으로 분석됐다. 대기 상층에서 내려온 뜨거운 공기가 지면을 둘러싸고 중상층의 고기압은 정체하면서 뜨거운 공기가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열돔 현상의 근본원인은 지구온난화라는 것이 기상학자와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것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하나는 올해와 같은 기록적 폭염이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름이 더 뜨거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는 자연 현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이 만든 문제고 재앙이다. 최선의 방법은 지구온난화를 완화시키는 것이지만 그마저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고 있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도 이미 축적된 온실가스와 그 영향을 제거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로 인해 해가 거듭될수록 자연재해가 많아지고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가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변화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나라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바로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를 잃을 위기에 처한 작은 섬나라들, 기후변화로 매년 홍수 피해를 입는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사막화와 가뭄 등으로 농사를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부당한 상황 때문에 ‘기후정의’라는 개념이 생겼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는 기후정의가 없고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기후정의, 기후평화 없는 세상
현 상황에 필요한 것은 지구온난화에 기여하지 않았는데도 지속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에 노출되는 사람들의 희생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기후평화’다. 그들의 목소리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만드는 데 반영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나아가 반복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기후변화 대응을 적극 지원하고 문제를 야기한 쪽과 피해를 당하는 쪽의 관계 회복과 평화적 공존을 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적으로 기후정의를 이뤄야 한다. ‘정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구온난화에 막대한 기여를 한 국가들은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지도, 피해를 입는 가난한 국가들의 기후대응을 충분히 지원하지도 않고 있다.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사회 집단과 개인도 마찬가지다.
기후정의와 기후평화가 없는 상황은 우리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세계 7위고 다른 나라보다 온도 상승률이 높다. 이런 상황은 기후대응과 관련된 에너지와 상품 소비의 증가를 낳고 그것이 다시 온실가스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응과 피해의 양극화다.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은 대응 과정에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주 적은 온실가스만 배출하는데도 반복해서 피해를 입는다. 에어컨 실외기 때문에 뜨거워진 도로와 밖에서 일해야 하고, 예상치 못한 날씨 때문에 생업에 피해를 입고,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으로 실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기후정의와 기후평화의 시각에서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인당 에너지와 물자 소비량이 많은 나라다. 이 작은 나라가 세계 7위의 탄소 배출국가라는 사실은 놀랍고 불명예스런 일이다. 우리가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약자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상황도 악화시키고 있다. 폭염은 앞으로 한 달에서 두 달이 되고 강도도 세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대응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이제 정말 심각하게 각자 이 사회와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기후정의와 기후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하지 않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 위 글은 서울 YWCA의 월간지 <서울YWCA>의 '우리가 꿈꾸는 평화세상' 연재를 위해 기고한 글이며 잡지가 출판된 이후 여기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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