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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초 4 평화로운 관계와 공동체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8. 7. 10. 10:04
평화와 폭력, 관계에서 시작
평화는 사회적 개념이고 관계를 통해 정의된다. 이런 관계는 평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평화의 부재 또는 파괴를 야기하는 폭력은 모두 관계에서 비롯된다. 폭력이 있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다른 누구에게 해를 입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원인이 되는 힘의 차이의 악용 또한 관계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관계에서 생기는 폭력은 관계를 단절시키고 때로 완전히 파괴한다. 그 결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 또한 중단되고 파괴된다. 이런 이유로 관계를 떠나서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계는 단순히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관계는 자신과 주변인, 가족, 조직, 마을을 넘어 사회와 세계에까지 확대된다. 또한 자신이 속한 집단 및 사회와 다른 집단 및 사회와의 관계까지 포함한다. 이런 모든 관계에 폭력이 없을 때, 다른 말로 다양한 관계에서 폭력이 제거되고 평화가 회복될 때 자신은 물론 자기가 속한 집단의 평화로운 삶이 이뤄진다. 나의 평화로운 관계와 삶이 곧 다른 사람들의 평화로운 관계와 삶이 되는 것이다.
관계는 공동체를 통해 평화에 더 다가가게 된다. 가족, 조직, 마을, 사회 등 다양한 공동체의 평화는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에 토대를 둔다. 관계와 공동체의 상호관계는 아주 밀접하고 끈끈하다. 평화로운 관계는 평화를 지향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공동체 없이 유지되기 힘들다. 대가족 내 부부나 형제 관계, 조직 내 동료 관계, 사회 내 집단 관계 등은 그들이 속해있는 공동체에 폭력이 있을 때 평화롭게 유지되기 힘들다. 다른 한편 공동체 또한 구성원들 사이에 폭력적인 관계가 존재할 때 결국 평화롭게 유지되지 못하고 깨진다. 이런 이유로 공동체는 평화의 또 다른 핵심 요소가 된다.
평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평화로운 관계에 기반한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화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관계와 공동체의 범위가 주변부터 세계까지 무한정 넓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의지와 능력을 갖춘 사람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평화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만드는 시도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곧 각자의 삶, 각자 속한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나의 삶은, 관계는 평화로운가
세상의 평화를 얘기하고 큰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는 폭력적이거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폭력을 외면하는 것은 모순이고 정당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나의 삶은 평화로운가?’란 질문을 해보자. 이 질문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평화 수준을 성찰해보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질문이 될 수 있다. 또한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평화는 사회적 개념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곧 ‘나의 평화’를 ‘세상의 평화’와 연결짓는 시작이 된다.
자기 삶, 그리고 자기와 연결된 주변의 평화 수준을 성찰하고 진단하는 것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만큼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곧 자신이 속한,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에 폭력적 요소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일상에서 얼마나 평화와 폭력에 민감한지, 폭력을 없애고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자기 삶의 평화가 우선이고 세상의 평화가 다음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어느 것이 먼저이든 간에 두 가지가 상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똑같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둘 중 하나에만 관심을 쏟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평화에 대한 옳은 접근이 아니다.
‘나의 삶은 평화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행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모색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관계와 공동체에 존재하는 폭력을 거부하고, 다툼과 갈등을 끝내고 평화를 만들며, 평화가 일회적 사건이 되지 않도록 잘 유지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폭력을 승인하지 않는 것을 넘어 폭력에 대한 묵인을 끝내는 것이다. 우리 주변과 사회의 많은 폭력은 다수의 승인보다 묵인에 의해 지속된다.
평화는 연결돼 있다. 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곧 주변 많은 사람들의 평화를 깨고, 한 사람의 평화는 곧 주변 많은 사람들의 평화가 된다. 폭력과 평화 모두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모두가 함께 사는 공동체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주변부터 살피는 것, 다시 말해 폭력과 평화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주변을 점검하고 행동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노력의 기본이 된다.
자기 삶과 주변을 평화롭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평화를 위해 일하기 힘들다. 자기 삶과 주변이 평화롭지 않다는 것은 자신이 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이거나, 폭력적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의도적으로 폭력에 눈을 감아 버리거나, 또는 침묵하면서 승인한다는 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상 외로 넓게 영향을 미쳐 세상의 폭력을 승인 또는 묵인하는 것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큰 평화도 작은 평화도 없다.
* 위 글은 서울 YWCA의 월간지 <서울YWCA>의 '우리가 꿈꾸는 평화세상' 연재를 위해 기고한 글이며 잡지가 출판된 이후 여기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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