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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초 3 나는 폭력의 피해자인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8. 6. 6. 08:14
희생자와 피해에 주목하기
평화를 연구하거나 탐구할 때 열심히 찾아내고 상세히 분석하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없애야 평화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적인 면에서 본다면 폭력을 상세히 언급해야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성취할 구체적인 평화의 모습과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폭력의 형태 중 하나인 전쟁에 직면했을 때 평화에 대한 구체적 필요가 확인되곤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폭력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는 폭력의 희생자를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의 근본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실은 이 두 가지가 평화와 관련된 연구와 활동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희생자의 문제를 보자. 폭력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다. 피해의 수준은 폭력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폭력을 추상적으로 언급하면 희생자는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빈곤을 외면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 사회 구조와 정책은 구조적 폭력의 도구가 된다. 그런데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가난한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방치하는 구조와 정책은 사회의 단순한 결함 내지 한계로 취급된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옛말과 함께 얼버무려지는 것이다. 정부와 사회의 외면과 무대책이 구조적 폭력이 되지도 않는다. 피해를 입은 사람과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폭력을 찾고 규명할 때는 반드시 폭력에 희생된 사람과 구체적인 피해가 언급돼야 한다.
힘의 차이의 악용
폭력의 근본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폭력이 어디서 왔는지를 찾아야 폭력의 뿌리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힘의 차이를 악용하기 때문에 생긴다. 물론 악용하는 것은 상대적 강자다. ‘힘’의 원천은 다양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와 직위가 가장 큰 힘이 된다. 그 외에도 교육 수준, 인맥, 정보, 재산, 출신 지역, 학연 등도 중요한 힘의 원천이 된다. 한국사회에서는 한민족인 것도, 그리고 장애인이나 성소수자가 아닌 것도 힘이 된다. 누군가 이것을 자신의 우월한 힘으로 인지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억압하고 행동이나 생각을 강요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한 마디로 악용할 때 폭력이 생긴다. 물론 폭력의 가해자는 강자고 피해자는 약자다.
폭력과 힘의 관계에서 중요하게 기억할 것은 힘이 고정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 절대적 약자도 절대적 강자도 없다는 얘기다. 누구나 폭력을 가하는 상대적 강자가 될 수도, 폭력의 피해를 입는 상대적 약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상대적 약자로 본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자신이 폭력을 가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를 입는 ‘약한 사람’임을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힘을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 생각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수많은 타인과 힘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자신은 항상 상대적으로 강자이거나 약자일 수 있다. 이런 힘의 관계는 밀접하고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도 만들어진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대학생 언니는 초등학생 동생에게, 부자는 빈자에게, 그리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에게 억압과 강요를 하는, 즉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게 된다. 일상에서 힘의 차이가 악용될 수 있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힘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자신이 자연스럽게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되면서 갖게 된 힘이다. 집단 안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힘을 가지고 그 힘을 행사하는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적은 힘을 가지고 있거나 소외되는 사람들도 있다. 힘이 적거나 소외된 사람들은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얻게 된 힘에 대해 무지하거나 그 힘을 부인한다. 그러나 다른 집단의 사람과 접촉할 때 집단의 힘은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 여행 온 백인,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는 한국인, 대기업 노동자, 공공기관 실무자, 중앙시민단체 활동가 등은 단지 백인 인종, 대한민국, 대기업, 공공기관, 중앙시민단체 등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힘을 갖게 되고 관계에서 힘을 악용할 가능성이 생긴다. 심지어 남성과 여성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 많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힘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그리고 현재도 인류사회가 남성이 만들어 놓은 구조, 담론, 문화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의 근본원인이 되는 힘의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타인의 힘의 관계를 성찰하는 것이다. 다양한 힘의 원천에서 비롯된 객관적 힘의 차이를 인지하고 자신이 그 힘의 관계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힘에 의존하는 관계를 해체하고 힘이 아닌 다름의 인정에 기초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사회와 개인의 삶을 발전시킬 자원과 동력으로 인정하고 다르지만 함께 사는 공존의 세상을 만드는 기초로 삼을 수 있다.
* 위 글은 서울 YWCA의 월간지 <서울YWCA>의 '우리가 꿈꾸는 평화세상' 연재를 위해 기고한 글이며 잡지가 출판된 이후 여기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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