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의 기초 2 우리의 평화 수준은?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8. 5. 2. 10:48
평화의 성취, 폭력의 부재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추상적 개념을 설파하거나 이상적인 상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평화가 이뤄져야 사람들은 평화롭다고 느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사회마다 다를 수 있다. 전쟁이 진행 중인 곳에서는 전쟁의 종식이 절실하게 원하는 평화가 될 것이다. 폭행과 폭언에 의한 피해가 많은 곳에서는 그런 물리적 폭력의 제거가 시급하게 원하는 평화가 될 것이다. 극심한 빈곤으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막막한 사람들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직장과 수입이 보장되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는 어떤 평화를 원할까?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고 그들 각자가 원하는 평화, 다시 말해 평화로운 삶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전체가 원하는 평화의 모습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하나는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과 전쟁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소위 ‘갑을관계’에서 비롯된 억압과 강요, 그리고 그에 따른 피해가 사라지는 것 또한 사람들이 바라는 평화로운 사회의 모습이다.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공존이 실현되는 것, 그리고 빈곤한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또한 사회의 편견과 선입견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고 사는 것 또한 한국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모습일 것이다.
각자 어느 상황과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우선적으로 원하는 평화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평화의 전제조건을 포괄하는 한 가지 언어는 폭력의 부재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원하는 평화로운 사회는 폭력과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이 없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평화를 구분하는 것과 연결된다.
평화는 이론상 소극적(negative) 평화와 적극적(position) 평화로 구분된다. 소극적 평화는 인간의 생명과 신체적 안전을 위협하는 물리적 폭력, 다시 말해 직접적 폭력이 없을 때 성취된다. 그러므로 소극적 평화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누려야 하는 기본수준의 평화가 이뤄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앞서 얘기한 군사적 긴장과 전쟁의 위험이 없는 한반도와 관련된다. 한국사회 모든 구성원은 이론상, 그리고 실제로 전쟁의 위험에 노출돼 생명과 안전을 담보 잡힌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폭행과 폭언, 그리고 신체적 이동이나 자유의 제한 또한 신체에 가해지는 직접적 폭력이므로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폭력 또한 없어야 신체적 안전이 보장되고 소극적 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한반도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과 관련해, 그리고 다양한 억압과 강요에 노출돼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평화, 곧 소극적 평화도 누리지 못한 채 살고 있다.
한국사회, 높은 수준의 폭력과 낮은 수준의 평화
적극적 평화는 직접적 폭력은 물론 구조적, 문화적 폭력도 없을 때 성취된다. 가정, 공동체, 회사, 사회의 뼈대가 되는 법, 규제, 체계, 절차 등을 도구로 삼아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은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다. 가정, 공동체, 회사, 사회에서 당연하게 약자를 차별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상황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문화적 폭력의 수준 또한 여전히 높다.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탈북민, 난민,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적 담론이 만연하고 가부장제 하의 성역할 관습에 따라 여성에 대한 문화적 폭력 또한 높은 수준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주장하고 주입하는 비뚤어진 종교적 가르침은 또 다른 문화적 폭력이다.
한국사회는 적극적 평화는 고사하고 소극적 평화의 수준조차 결코 높지 않은 상황인데 이것은 한국사회의 폭력 수준이 높음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다수가 별일 없는 것처럼 사는 이유는 그만큼 폭력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 평화든, 적극적 평화든 완벽하게 이뤄내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설사 전쟁이 없더라도 신체에 해를 입히고 생명을 위협하는 물리적 폭력이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극적 평화는 더욱 큰 도전이다. 사회적 약자가 없이 모든 구성원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사회 구조를 갖추고 편견, 차별, 혐오 등의 문화적 폭력까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모든 폭력이 한꺼번에 제거되고 평화가 완벽하게 성취될 수는 없다. 그래서 평화는 평화를 향해 가는 과정, 다시 말해 폭력을 점진적으로 제거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현재 한국사회, 나아가 대다수 공동체나 집단의 평화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그렇다면 평화를 향한 과정은 길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화를 얘기함과 동시에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평화를 가는 과정 자체가 곧 그 전보다는 더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평화로 가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평화를 알고, 느끼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화는 곧 과정이다.
* 위 글은 서울 YWCA의 월간지 <서울YWCA>의 '우리가 꿈꾸는 평화세상' 연재를 위해 기고한 글이며 잡지가 출판된 이후 여기에 싣습니다.
'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민이 될 권리 (0) 2018.06.26 평화의 기초 3 나는 폭력의 피해자인가? (0) 2018.06.06 평화의 기초 1 왜 평화를 얘기하는가 (0) 2018.04.02 성폭력과 집단의 폭력성 (0) 2018.02.28 절반이 사회적 약자인 나라 (0) 2018.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