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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방문기: 순례의 땅, 고통의 땅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8. 7. 3. 11:19
베들레헴의 금요일 아침 풍경
삼엄한 입국 절차, 안전 또는 전략?
2018년 4월 23-27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 대표단이 한국-팔레스타인 교회협의회를 위해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내용상으로는 앉아서 회의를 하는 것보다 팔레스타인 상황의 이해를 위해 성지를 포함해 다양한 곳을 방문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이것은 “와서 보라(Come & See)”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의 간곡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동시에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조차 정작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보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점령해 억압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지지하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이런 이유로 교회협의회의 방문은 팔레스타인 교회지도자들과의 만남과 대화, 대안 성지순례, 팔레스타인 삶의 현장 방문의 세 가지 주요 내용으로 구성됐다.
팔레스타인을 방문하려면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으로 가야 하고 한국에서는 직항이 없어 이스탄불이나 홍콩 등 제3국을 거쳐야 한다. 텔아비브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긴장하게 된다. 삼엄한 탑승 수속 때문이다. 공항 검색직원은 작은 가방, 배낭, 컴퓨터 등을 샅샅이 뒤지고 밀착 몸수색까지 한다. 텔아비브 공항의 입국 수속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방문 목적에 대해 잘 답하지 못하거나 머뭇거리면 따로 조사를 받고 최악의 경우 되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와 다르게 출국 수속도 삼엄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어느 곳을 왜 방문했는지, 이전에 어느 나라에 왜 갔었는지 등을 꼬치꼬치 묻고 따로 불러 몇시간씩 조사를 하기도 한다. 다행히 대표단은 이 모든 수속을 큰 일 없이 넘겼다.
삼엄한 탑승, 입국, 출국 수속을 경험한 방문자들은 이스라엘이 테러에 노출된 나라고 근본문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이스라엘이 정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로 자주 텔아비브 공항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후자를 주장하기도 한다. 전 세계 방문자들에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심고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호되게 다뤄서 다시 못오게 하려 한다는 해석도 있다.
베들레헴 난민촌 벽의 그림
베들레헴, 지배와 억압의 흔적들
텔아비브에 도착한 후 대표단은 곧장 팔레스타인 땅인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베이트 사후르(Beit Sahour)에 있는 목자의 들판이었다. 예수 탄생 이야기를 되새기며 목자의들판교회, 우유동굴교회 등을 둘러봤다. 그곳에는 비잔틴시대 수도원 발굴 현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조금 시선을 돌려 유대인 정착촌인 하르 호마(Har Homa)를 볼 수 있었다. 하르 호마는 1997년 건설된 동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정착촌 중 하나로 현재 4만 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은 베들레헴의 확장을 막고 동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분리하기 위해 하르 호마를 건설했다. 정착촌 건설과 확장을 위해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토지를 몰수했다. 이런 정착촌은 베들레헴에만 25개에 달하고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정착촌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팔레스타인 땅에 불법으로 사는 유대인 정착민은 75만 명 정도로 이스라엘 인구의 11%에 달한다.
베들레헴에는 예수탄생교회 등 많은 성지가 있지만 다른 한편 곳곳에서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의 상징인 분리장벽을 볼 수 있다. 8미터 정도 높이의 분리장벽은 견고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고 위에는 감시카메라가 달려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을 막고 마을들을 서로 분리하며, 유대인 정착촌을 보호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 통치하기 위해 분리장벽을 만들었다. 인류사에서 보기 드문 억압, 부정의, 차별의 상징이다. 분리장벽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세계 방문자들이 그린 많은 그라피티 그림이 있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카드 그림도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나는 숨 쉬고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유를 생각한다. 나도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써있었다.
베들레헴에는 고향에서 쫓겨나 자기 땅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이 사는 3개의 난민촌이 있다. 대표단은 그중 하나를 돌아봤다. 1948년 건국을 전후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마을 400-600개를 파괴했고 학살을 자행했다. 이로 인해 75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이 됐다. 1967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를 점령한 이후에도 46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은 약 540만 명으로 41%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에, 그리고 나머지가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주변국에 살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옛집 열쇠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난민촌 입구에는 그것을 상징하는 커다란 열쇠 조형물이 있었다. 난민촌 곳곳에서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가득찬 눈은 순수하면서도 공허해 보였다. 70년을 살아온 조부모와 부모 세대를 지나 아이들은 또 얼마나 오래 희망 없는 난민촌에서 살아갈지 알 수 없다. 대표단이 방문한 한 시민단체의 옥상에서는 난민촌, 분리장벽, 그리고 멀리 하르 호마 정착촌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는데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그런 모습을 ‘사악한 삼위일체(unholy trinity)’라고 불렀다.
올드시티 성묘교회 안 예수의 관이 안치된 곳에 들어가기 위해 줄서 기다리는 순례자들
예루살렘 올드시티, 팔레스타인 땅의 성지
다음 날 대표단은 예루살렘의 올드 시티(Old City)와 주변을 둘러봤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 시티는 동예루살렘에 속해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올드 시티를 포함한 동예루살렘을 빼앗았고 1980년 예루살렘법을 통해 이스라엘에 합병시켰다. 유엔안보리는 결의안 478을 통해 이를 무효화했다. 올드 시티를 포함한 동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점령당한(occupied) 팔레스타인 영토로 돼 있고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았고 현재는 동예루살렘의 86%를 이스라엘인과 유대인 정착민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갖은 방법으로 팔레스타인 인구를 줄여나가고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 시티 안에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지가 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는 1981년에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스라엘은 이곳을 찾는 전 세계 성지순례자들을 통해 막대한 관광수입을 얻는다. 이런 이유로 관광업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산업 중 하나가 됐다. 성지순례자들 중 대부분은 정교회, 가톨릭, 개신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이다. 이들은 올드 시티 외에도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많은 성지를 방문한다. 이런 관광수입의 90% 이상은 이스라엘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올드 시티가 있는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 합병시킨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성지순례자들은 올드 시티 안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던 골고다 언덕과 예수의 무덤이 있는 성묘교회를 방문하고 올드 시티 밖의 감람산에 오른다. 그들은 자신이 성서에 기록된 곳에 서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예수 탄생 때부터 지금까지 그곳에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 자신들이 방문하는 동예루살렘, 베들레헴, 여리고, 헤브론 등이 팔레스타인 땅이고 그곳에 자기 땅에서 억압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성스러운’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예수의 삶을 본받을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헤브론의 팔레스타인 가게를 강제 폐쇄한 후 그 앞에 만든 정원과 그네
70년의 고통과 일상이 된 억압
팔레스타인이 점령된 땅임을, 그리고 이스라엘의 점령이 얼마나 비인도적이고 잔인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검문소(checkpoint)다. 대표단은 넷째날 새벽 5시 30분에 베들레헴에서 가장 큰 검문소인 <검문소300>을 찾았다. 새벽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검문소를 거쳐나간 후였다. 하루에 동예루살렘으로 일하러 가는 건설노동자들 6-7천 명이 이 검문소를 거친다. 보통 새벽 2시가 지난 이후부터 사람들이 몰리고 그들은 좁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붐비는 통로에 선 채로 2-3시간을 기다린다. 돌아올 때도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돌아오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2013년 통계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에는 이스라엘군이 세운 99개의 상시검문소와 200개가 넘는 임시검문소가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민들과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매일 검문한다. 검문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유린의 상징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저항하면 무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노동자들 뿐만아니라 노인, 여성, 어린이, 학생들도 예외 없이 이동을 위해서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넷째 날에는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볼 수 있었다. 맨 처음 본 것은 1948년 이스라엘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인근의 팔레스타인 마을터였다. 4천 명 이상이 거주했던 옛마을에는 폐가들만 스산하게 서있었다. 다음으로 본 것은 팔레스타인 주택이 철거된 자리로 벽돌과 철골만 남아 있었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니 집이 없어지고 집안에서 아무 것도 꺼낼 수 없는 참담한 상황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무허가 주택 제거,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전, 테러 가담자가 있는 동네에 대한 처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팔레스타인 주택을 철거한다. 1967년 이후 동예루살렘, 웨스트뱅크, 가자에 있는 주택 4만 8천 채 이상이 철거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주택건설 허가를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불법으로 주택을 지었을 경우 자진 철거와 강제 철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강제 철거의 경우 그에 대한 막대한 벌금과 철거 비용을 집주인이 모두 부담해야 하고 자진 철거일 경우에도 벌금을 내야 한다.
예루살렘, 베들레헴, 여리고, 헤브론 등 성지가 있는 곳과 주변에서는 항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이 거기 살고 있기 때문이고, 점령당한 땅에 사는 그들의 모든 일상이 이스라엘에 의해 억압과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청년들
팔레스타인, 기독교의 뿌리가 있는 곳
대표단은 다양한 팔레스타인 교회지도자들을 만났고 팔레스타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기독교 인구는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억압과 불안한 미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팔레스타인을 떠나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기독교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소수 종교가 됐지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가 서구의 종교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종교고 성경이 팔레스타인 책임을 강조했다. 대표단을 안내한 한 젊은 신학자는 자신의 조상이 처음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족 중 하나며, 대를 이어 구전으로 신앙을 이어왔고 자신도 딸에게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억압, 차별, 고통이 일상이 된 팔레스타인의 긴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기독교인들은 2009년 카이로스 선언을 발표하고 전 세계 교회에 팔레스타인의 정의와 평화를 호소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10년 후인 2017년에는 팔레스타인 교회와 단체들이 절망적 상황에서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다시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그러나 세계의 주류 교회는 여전히 냉담하고 가시적인 변화는 없다고 교회지도자들은 말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억압과 탄압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유대인을 향한 증오가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임을 분명히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비폭력 저항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그런 원칙을 무슬림들도 지지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교회지도자들은 세계 기독교인들이 ‘약속의 땅’에 맞춘 신학을 얘기하면서 이스라엘만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을 인정하지도 만나지도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1년에 약 2천만 명의 성지순례자들이 방문하지만 그중 2천 명 정도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을 만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 성지순례자들을 만난 적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때문에 성지순례자들은 팔레스타인은 가해자고 이스라엘은 피해자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고 말했다. 교회지도자들은 한 목소리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을 만나고 팔레스타인 쪽의 이야기를 듣는 대안 성지순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대안 성지순례를 조직하고 보수적 신학자들도 와서 직접 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기를 요청했다.
팔레스타인 교회지도자들은 한국교회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나아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과 정의와 평화가 없는 현실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간곡히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팔레스타인 교회지도자들과 공동논의그룹을 만들고 향후 대안 성지순례와 교류 프로그램의 실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팔레스타인 인구 중 기독교인은 극소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곳에서 여전히 신앙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온갖 억압과 차별에도 떠나지 않는 것을 최고의 저항으로 여기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구 중 무슬림이 다수이지만 그곳에 종교 갈등은 없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개신교, 정교회, 가톨릭, 이슬람을 가리지 않고 함께 연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런 팔레스타인으로 성지순례를 간다. 그러나 성지순례 동안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 예수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성지순례에서 예수가 항상 함께하고 사랑했던 고통받는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
* 위 글은 <기독교사상> 7월호에 실린 것으로 무단 복사 및 배포를 할 수 없습니다. 인용이나 참고자료로 사용 시에는 반드시 출처를 명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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