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8월, 뜨거운 한.일 갈등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9. 8. 15. 14:13
더 뜨거워진 8월
8월은 가장 뜨거운 달이다. 날씨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그렇다. 8월엔 광복절이 있고 일본이 식민지배 때 저지른 만행과 그후의 철면피 같은 행동을 되새기면서 분노와 답답함으로 열불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른 한편 8월엔 청소년과 청년에서 일반인까지, 그리고 민간단체에서 지자체까지 여러 방면에서 한.일 교류가 많은 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이유로 8월이 뜨겁다. 한.일 대립과 갈등이 정점에 달해서다.
8월은 일본에게도 뜨거운 달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됐고 일본은 항복을 했다. 8월에 일본인들은 핵폭탄 투하를 기억하고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 위험을 알리는 캠페인을 한다. 일본인들은 이를 통해 식민지배와 전쟁을 통해 수많은 피해를 만든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한다. 고의든 우연이든 일본 정부와 많은 일본인들이 식민지배와 전쟁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한 결과는 같다. 그런 부인과 무지함 때문에 일본인들은 아시아 국가들과 깨어있는 세계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일본 국내에서도 과거의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들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대립까지는 아니지만 이견이 생긴다. 이런 조용한 분열 상황은 일본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올해 8월은 유난히 더 뜨겁다. 과거 잘못과 해결 방식을 부인 및 거부하는 일본의 경제 보복과 그에 대응하는 한국의 일본산 불매 운동, '아베 반대' 때문이다. 이제는 소수지만 상식있는 일본 시민들까지 '아베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뜨거운 8월을 보내고 있다.
세계시민으로 살기
지난 5월 도쿄에 있는 가톨릭대학인 소피아대학교에서 열린 <평화, 비핵, 인류 문명의 미래>라는 심포지엄에 한국 발제자로 참석했다. 핵무기의 위험을 논하고, 일본의 피폭 경험을 공유하며, 다양한 시민단체 차원에서 평화를 위한 핵무기 거부를 논하는 자리였다. 북한 핵무기 문제로 덩달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한국과 기독교의 대응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발제를 통해 나는 한국의 개인과 단체, 심지어 종교까지 일본의 피폭에 대해 무관심한 상황을 깨달았음을 고백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일본의 피폭 경험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것이고 그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국을 대할 때는 그 전에 있었던, 일본이 저질렀던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의 중 피폭자 증언을 위해 나온 할머니와의 만남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주 유쾌한 그녀는 어린아이로 피폭됐던 자신의 경험을 얘기할 때는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자신과 주변의 친구, 언니들의 힘들었던 과거를 공유한다고 했다. 저녁식사 후 함께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내게 "한국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라고 물었다. 나는 "한국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면 한국인들도 함께 아파해줄 것"이라고 답했다. 세계시민으로서 함께 연대해줄 것이라고 말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불매운동과 아베 반대, 그리고 일본 정부와 민간의 혐한 발언과 방송 등으로 뜨겁다. 그 와중에도 한국의 대다수 시민과 일본의 상식있는 시민들은 연대를 강화해하고 있다. 두 나라의 시민들이 함께 '아베 반대'를 외칠 수 있는 이유는 한.일 두 나라의 시민을 넘어 세계시민으로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연대하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의 이익만 생각한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피폭을 경험한 일본의 아픔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공감이다. 일본의 깨어있는 시민들이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처럼 우리도 일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뜨거운 8월에 한.일 시민의 연대가 더 견고해질 수 있다.
최근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들은 역사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것은 자칫 민족주의만 강화하는 방향이 될 수 있다. 그런 접근은 한.일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한.일 시민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한.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한.일 시민의 연대와 세계시민의 지지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시민교육의 강화다. 세계시민으로 우리의 문제는 물론 일본의 문제에도 대응하고, 나아가 세계가 직면한 정의와 평화의 문제에 대응하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8월 15일 광복절이다. 우리 민족의 광복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그것을 넘어 한.일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평화의 담론 위에서 한.일 시민이 연대하고, 어떻게 세계시민의 역할을 할지를 고민해볼 일이다.
'평화갈등 이야기 >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책 세계시민수업 평화 (0) 2019.10.24 댓글과 폭력사회 (0) 2019.10.16 일본산 불매운동과 정의 실현 (0) 2019.07.18 평화의 기초 10 평화교육, 평화로운 세상의 토대 (0) 2019.05.14 폭력의 잠재적 대상으로 산다는 것 (0) 201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