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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빌딩과 한반도평화 5 폭력사회에서 평화사회로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8. 6. 21. 15:38
전쟁 준비와 폭력문화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의 성과가 하나씩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성과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전쟁의 가능성 또한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당분간 그렇다는 얘기다. 한반도는 휴전상태고 이론상 전쟁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미 연합훈련이 '폐지'가 아니라 '중단'되고 정부가 을지훈련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한다. 이것은 대화가 잘 진행되지 않거나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언제든지 훈련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방부는 한국군의 단독훈련은 더 강화하겠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을 준비하는 사회다.
엘리스 볼딩(Elise Boulding)은 폭력문화와 관련해 공격의 사회화(Socilization for Aggression)을 지적한다. 전쟁을 겪었거나 전쟁에 참여했던 사회에 존재하는 전쟁 준비와 무력 충돌의 승인이 다방면에서 시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시민의 공격성이 형성 내지 강화되고 그것이 정치, 스포츠, 언론, 시민의 언어는 물론이고 사회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얘기한다. 전쟁을 준비하는 사회에서 폭력문화가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모든 영역에 스며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폭력문화의 피해는 결국 그 사회 구성원들 전체가 입게 된다. 비록 개인이 그런 피해를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우리사회는 19세기 말부터 계속 전쟁 내지 무력 충돌의 직접적 영향 하에 있었고 그런 역사는 우리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나아가 평화롭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롭지 않은 삶에 대해 거의 성찰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것은 아마도 평화 경험의 부재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전쟁이나 무력 충돌의 위험이 없는 상태, 그리고 전쟁 준비에 몰두하지 않는 우리사회를 경험해본 사람은 단언컨데 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폭력문화에 길들여진 탓에 별로 문제의식 없이 살아온 것이다.
평화문화와 평화사회
한반도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한 단계는 싸움을 중단하는 피스메이킹(peacemaking), 다시 말해 평화만들기다. 한국전쟁을 휴전협정으로 중단했을 때 우리는 이미 피스메이킹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후 피스키핑(peacekeeping), 즉 평화유지를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남한과 북한의 무력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됐고, 그 결과 남한은 최첨단무기로 무장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해 군사적 긴장과 대결 수준을 최고점으로 끌어올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피스빌딩은 피스메이킹과 피스키핑을 거쳐 평화의 완전한 정착까지를 포괄하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현재 피스빌딩의 첫 단계에 있고 갈 길은 아직 너무 멀다.
평화의 정착으로 가기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남.북.미 3국이 각자의 절박감과 필요 때문에 대화 국면을 이어가고 있지만 모두 중무장을 한 상태고 전쟁 준비 또한 계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폭력문화와 작별하고 평화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쟁 준비를 중단하고, 공격의 사회화를 제거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화롭게 살 권리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노력은 정부가 아니라 대중에 의해, 다른 말로 하향식(top-down)이 아니라 상향식(bottom-up) 방식에 의해 이뤄질 때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회담과 같은 정치적 과정은 정부가 주도하겠지만 평화 정착을 목표로 하는 컨텐츠를 만들고 이행하는 데에는 국민의 지지와 참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의 지지와 참여는 평화를 삶의 가치와 태도로 삼고 행동으로 이어가는 평화문화의 확산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평화로운 삶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제로 평화롭게 살기 위해, 그리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결단(예를 들어 전쟁 연습의 완전 중단과 군축 등)이 필요할 때 정말 평화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너무 이상적이라거나, 현실성이 없다는 핑계를 대곤 한다. 그런데 평화사회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평화는 성취될 수 없다. 개인의 평화 또한 성취될 수 없다. 자주 잊어버리지만 우리가 지난 70년 동안 전쟁 준비에 몰두하고 군사 대결을 조장하는 사회에 살면서 직접 경험한 것이다. 많은 책임을 정부에 돌리지만 사실 정부가 전쟁 준비에 몰두하고 폭력사회를 만들게 힘을 실어준 것은 지지와 승인을 한, 또는 침묵과 묵인을 한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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