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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판 뒤집기, 재발은 막아야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8. 5. 25. 16:22
최대 ‘압박’과 ‘벼랑끝’의 만남?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극단적 압박을 이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협상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해서 사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이런 방식은 외교적으로는 수용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방식이다. 다른 한편 오랫동안 북한은 소위 “벼랑끝 전술”을 써왔고 그것 또한 외교적으로 적절치 않고 국제사회에서 수용되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도 북한에겐 상관없었다. 어차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신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남북회담을 계기로 방식을 바꿨다. 자기 말에 책임은 지면서 국제사회 관례에 맞는 협상을 하려 노력해왔다. 반면 미국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과거의 북한과 같은 수준의 국가가 됐다. 트럼프 하에서 미국은 체면이나 비난에 상관없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어쨌든 가까스로 해빙 지점에 도달한 한반도는 ‘압박 전술’을 쓰는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최악의 사실은 트럼프가 평화를 위한 의지나 사명감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사명감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는 북한의 김정은보다 못한 사람이다. 남과 북은 그런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
국내.외 많은 언론과 소위 전문가들이 북미회담이 깨진 이유 중 하나가 북한의 연이은 불만 제기와 노골적 비난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사실 북한의 심기를 먼저 건드리고 노골적으로 공격한 것은 미국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볼턴은 계속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몰락한 리비아와 북한을 동일시했다. 미국은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를 언급하면서 노골적으로 김정은을 겨냥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지난 17일 백악관에서 미국이 “리비아를 초토화”했고 “카다피를 죽였다”고 말했다. 덧붙여 미국이 “이라크에서도 (리비아에서와) 같은 일을 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 즉 체제 보장 문제를 들며 북한을 협박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부통령인 펜스가 다시 북한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리비아처럼 끝날 것”이라고 협박했다. 노골적으로 북한 붕괴와 김정은의 몰락 내지 암살을 언급한 것이고 정상회담을 앞둔 나라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할 말은 아니었다. 이런 일련의 협박성 발언을 접하면서도 북한은 트럼프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다. 회담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의 문제가 아니라 참모들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트럼프에게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노골적으로 지도자의 생존까지 언급하는 참모들의 입을 단속하고 내부 이견을 조율하라는 요구였을 것이다. 결국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아니라 미국의 ‘압박 전술’인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시설을 예정대로 폭파한 것을 봐도 북한의 대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사실 북한의 비난과 문제 제기는 상대적 약자의 방어적 공격이었다. 모든 것을 뺏기지 않으려는, 그리고 최소한 자존심은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미국이 북한, 아니 한민족의 소통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그것을 읽지 못했는지 아니면 전혀 모르는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힘의 불균형 극복이 관건
트럼프의 정상회담 취소는 ‘압박 전술’의 하이라이트다. 회담을 3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전 세계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했다. 북한에게 자기가 판을 깰 수 있는 힘을 가졌음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회담 취소 편지에서는 “북한이 핵능력을 언급하지만 우리의 힘은 훨씬 더 막대하고 강하며...”라고 물리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었지만 어쨌든 트럼프는 목적을 달성했다.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협상 경로를 완전히 바꿔놓았으니 말이다. 트럼프는 언제든 자신이 가진 힘을 최대한 이용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다. 협상 상대로는 진정성도 예의도 없고 자신의 최대 이익만 추구하는 최악의 인물이다. 북한은, 아니 남한도 함께 그런 트럼프를 상대해야 한다.
북한은 트럼프의 회담 취소 결정에 대해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아주 정돈된 외교적 표현이지만 이것은 어찌보면 상대적으로 약한 북한이 트럼프의 힘과 막무가내 태도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한은 미국과 ‘동맹’으로 밀착돼 있고, 국제사회는 항상 북한을 가재미눈을 뜨고 보며 의심하고 있고, 그래서 회담 취소가 북한의 탓이라고 백악관의 앵무새 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무엇이 있겠나 싶다. 핵실험시설까지 폭파한 마당에 북한의 힘은 더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개발한 핵무기는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이미 비핵화를 선택했고 대신 오랜 과제였던 체제 안전과 경제발전을 택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절실하게 필요하니 자존심을 꾹꾹 누르고 있는 것 같다.
협상은 양측의 힘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야 성공할 수 있다. 개인 사이든 국가 사이든 마찬가지다. 북미회담 개최가 결정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북한이 그동안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미국과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 만큼 힘을 키웠기 때문에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패를 다 보여줬고 미국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실질적 행동을 바라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을 잘 아는 미국은 수시로 협박 카드를 내밀고 있다. 이 힘의 불균형을 원만한 균형으로 만들어야 회담이 이뤄지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북미회담이 다시 결정되고 성공할 수 있으려면 한국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세계는 한국정부, 더 정확하게는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고 한국정부의 주도로 북미회담까지 결정됐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여전히 미국과만 밀착돼 있다. 북한과는 여전히 신뢰가 낮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논쟁과 불협화음이 생기는 상황에서도 북한이 신뢰할 수 있을만한 태도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한미회담에서 같은 한민족으로 한국정부가 북한의 속내, 자존심, 심정 등을 미국에게 얼마나 잘 설명했는지도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힘을 통한 평화”의 리더십 덕분에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고 칭찬한 것을 보면 트럼프의 압박 전술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 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현재 힘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힘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미국은 계속 압박 전술을 이어갈 것이고 재회담이 잡혀도 다시 판을 뒤집을 수 있다. 그러니 한국정부가 미국이 북한을 계속 압박하지 않도록, 그리고 북한이 미국을 상대할 힘을 좀 더 키울 수 있게 할 방안을 찾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협상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남한이 노력하는 것은 남북 신뢰관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사실 남북회담 한 번으로 신뢰관계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 북한은 계속 미국만 지지하는 남한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민감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겉으로 북한과 함께 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미국에만 힘을 실어주는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 판을 엎은 마당에 그것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북한의 심정을 설명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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