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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빌딩과 한반도평화 4 역량형성을 위한 준비와 훈련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8. 4. 20. 10:52
평화를 위한 시간의 축
남북 정상회담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북미 정상회담도 일정과 장소를 적극적으로 조율 중이다. 올해 1월부터 불과 몇 달 사이에 이런 변화가 있으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남북회담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까지 논의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으니 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오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 모든 변화는 정치권, 정확히는 정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오랜 세월 다양한 시민단체와 학계 등 비정치권에서 축적된 주장과 담론이 토대가 되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겠지만 어쨌든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정부에서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 수도 있다.
이런 급변하는 상황에서 대중은 무엇을 할 것인가? 대중은 정부에 지지를 표하고 그것을 주간 여론조사에 반영시키는 것 외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 먹는" 것만 해도 될까? 사실 지금 우리는 몇 달 전까지 계속되던 비상상황에서 벗어난 것에 불과하다. 남북, 그리고 북미가 핵무기 폐기와 평화체제를 위한 회담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평화를 위한 토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동계올림픽 전후,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해빙 무드는 엄격하게는 겨울, 그러니까 전쟁의 위기를 피하는 상황일 뿐이다.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의 피스빌딩을 위한 시간의 축은 이런 상황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접근이다. 그가 성찰한 네 단계의 시간은 눈 앞의 것부터 차례로 위기 개입(Crisis Intervention), 준비와 훈련(Preparation and Training), 사회변화 디자인(Design of Social Change), 그리고 바람직한 미래(Desired Future)로 구성된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 눈 앞의 급박한 상황에 대응하는 위기 개입 단계에 있다. 물론 첫 단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비관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자 시작의 지점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역량형성을 위한 준비와 훈련
그렇다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바람직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무엇일까? 위의 시간의 축에 따르면 다음 단계, 곧 준비와 훈련이다. 이것은 비슷한 위기가 닥쳤을 때 뒤로 후퇴하지 않고, 나아가 이전보다 잘 대응하기 위해 관련된 사람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동시에 다음의 다른 두 단계, 즉 사회변화 디자인과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노력을 말한다. 남북문제 및 한반도 평화 현안에 잘 대응하기 위한 역량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역량도 포함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대중의 역량이다. 그런데 우리사회 대중의 역량은 아주 낮은 수준이다. 남북문제가 우리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과 상처 중 하나는 일부 개인과 집단의 주도 및 통제로 이뤄진 이념 논쟁과 대결인데 그 영향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것은 남북문제를 이해하고 그에 대응하는 대중의 역량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리사회는 체계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은 각개 약진의 형태로, 그리고 주관적 경험과 학습으로 각자 조금씩 역량을 형성해 왔다. 평화통일운동을 하는 단체들조차 대중의 역량 형성보다는 캠페인과 행사에 더 초점을 맞춘 활동을 해왔다. 대부분이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었고 다음의 위기에 더 나은 방법으로 대응하기 위한 준비와 훈련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중의 역량이 형성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수 있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번의 진보성향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핵무기 개발과 전쟁의 위기를 반복했던 것, 그리고 그 와중에 다수의 대중 또한 치밀한 상황의 분석과 미래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고민보다 북한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에만 불타 있었던 것을 봐도 그렇다. 선거 때마다 이념 논쟁이 불거지고 그것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하면서 대중이 정부와 정치권에 휘둘리는 것을 봐도 그렇다. 지금의 상황은 이전 정부의 상황과 좀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수의 대중이 정권과 정치권의 영향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한반도가 해빙기를 맞고 있는 지금 그동안 평화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활동해온 많은 시민단체, 종교단체, 학계 등은 정부 주도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분석과 지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사회 변화와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대중이 준비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얼음이 다 녹고 정말 봄이 도래할 수 있도록, 한 번의 비바람에 하루아침에 꽃이 다 떨어져 버리지 않도록 대중의 역량을 키우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목소리를 내고, 각자의 생각과 분석을 얘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남북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을 때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함께 만들어갈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중의 역량을 만드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정권은 바뀌고 정치는 정치적 상황의 영향을 받는데 그런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토대와 힘은 결국 대중, 다시 말해 시민의 역량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핵심 주체 또한 바로 대중이기 때문이다.
* 피스빌딩은 '평화세우기'로 번역돼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아직 이 용어가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 영어 용어 그대로를 한글로 표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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