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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빌딩과 한반도평화 3 한국전쟁, 선택된 트라우마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8. 3. 23. 15:00
평화의 시계탑
멈춰버린 시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 앞에는 '평화의 시계탑'이란 조각상이 있다. 무기더미 위의 두 소녀가 각각 두 개의 시계를 들고 안고 있는 조각이다. 전쟁기념관 입구 게시판과 홈피에서 찾은 설명에 의하면 위쪽에 있는 남쪽 소녀의 시계는 현재의 시간을 가리키고, '밝고 힘찬 미래'를 향해 계속 움직이는 시계다. 아래쪽에 있는 북쪽 소녀의 시계는 6.25 전쟁 시작과 함께 멈춰버린 시간을 상징한다. 통일이 되는 그날에는 아래쪽 시계를 두 소녀 사이에 설치해 남북이 하나됨을 표시할 거란다.
조각상은 통일을 지향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심지어 '저주'까지 내포하고 있다. 남한은 계속 발전하지만 북한은 6.25에서 멈춰버린, 아니 그랬으면 하는 사회로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통일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은 남북이 하나됨을 말하지만 실은 발전한 남쪽이 뒤쳐진 북쪽을 흡수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전쟁기념관의 존재 자체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의 지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런데 진짜 멈춰버린 시계는 우리사회 안에 있다. 한국전쟁은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있고, 시시때때로 되살려진다. 정전협정 이후 65년 동안 군비경쟁과 무력대결에 그렇게 몰두했던 것도 한국전쟁 때문이다. 북한과 정치적, 군사적 대결을 계속했던 것도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증오와 불신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에 나오는 노인들이나 북한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보수 우익 기독교인들의 증오와 적대감 또한 한국전쟁에 뿌리내리고 있다. 게다가 한국전쟁은 전쟁에 희생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이 아니라 국가안보의 시각에서 해석되고, 그들의 죽음은 애국심의 테두리 안에서 포장되고 기억된다. 한국전쟁은 매일 되살려지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멈춰진 시계는 북쪽이 아니라 남쪽에 있다.
갈등 후 사회(post-conflict society)의 피스빌딩
피스빌딩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내용 중 하나는 (무력)갈등 후 사회의 회복이다. 거기에는 사회 인프라의 재건부터 정의의 실현, 관계의 회복, 묵은 갈등의 해결과 새로운 갈등의 예방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된다. 이를 위해 하향식 정책 결정과 실행은 물론 상향식 활동과 역량형성 교육도 포함된다. 이런 복잡한 내용과 활동이 포함되는 이유는 증오와 반목에 사로잡히지 않고 과거의 충돌과 폭력으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다. 나아가 관계의 회복과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통해 평화로운 공존과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접근에서 반드시 다뤄야 하는 것이 바로 과거다. 사람들은 미래를 향해 가기를 원하지만 사실은 항상 과거를 보고 있다. 모든 문제가 과거에서 비롯됐고 과거를 다뤄야 결국 현재와 미래도 다룰 수 있다.
피스빌딩 이론의 대가인 존 폴 레더라크는 <도덕적 상상력>이란 책에서 '우리 앞에 놓인 과거' 중에는 '기억된 역사(remembered history)'가 있음을 언급한다. 이것은 집단의 정체성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역사로 '선택된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자기 집단의 정체성 확인을 위해 적대적 집단에 의해 공격받고 상처받은 특정 기억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강화해 트라우마화한 역사다. 이런 선택된 트라우마는 "집단 간의 방어, 선제 폭력, 심지어 복수에 대한 정당성까지도 부여한다"고 언급한다. 기억된 역사는 적대적 상대와 새로운 일에 직면할 때마다 새롭게 기억되고 계속 재생된다. 한국전쟁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트라우마로 선택하고 끊임없이 생생한 집단적 기억으로 재형성해왔다. 거기에는 북한에 대한 증오와 반목이 있고 그것에 기초해 북한에 대한 복수와 공격의 정당성이 만들어진다. 전쟁 자체의 폭력성, 비윤리성, 반인도주의 등을 성찰하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 것에 대해 반성하고 애도하는 접근은 없다. 전쟁으로 인해 겪은 수많은 개인 및 마을공동체 삶의 파괴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은 북한과의 적대관계의 지속을 위해 선택된 트라우마고 그 기초 위에서 전쟁기념관도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을 한반도 안에서 수많은 희생자와 고통을 낳은 아픈 역사가 아닌 선택된 트라우마로 지속시키는 한 한국전쟁을 새롭게 해석하고 한반도평화를 위한 교훈으로 삼기는 힘들다. 그동안 미뤄뒀던 피스빌딩 노력도 시작할 수 없다.
* 피스빌딩은 '평화세우기'로 번역돼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아직 이 용어가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 용어 그대로 한글로 표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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