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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한엔 인권 공격 남한엔 평화 판매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7. 11. 8. 17:10
트럼프, 북한 인권 소환
트럼프 방한의 폭풍 같은 이틀이 지났다. 아니 사실은 지난 주부터 시작된 트럼프 반대 시민행동을 포함하면 거의 일주일의 긴장이 끝난 셈이다. 트럼프 방한의 하이라이트는 국회 연설이었다. 그가 어떤 말을 할지 대한민국이, 아니 전 세계가 주목했다. 연설은 예상을 비켜갔다. 연설 직후 대부분의 언론은 걱정한 것과 다르게 북한에 대한 군사 옵션 언급이나 무역 문제에 대한 공격성 발언이 없었기 때문에 '잘 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트럼프는 오래된 '보수 우익'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북한 인권 문제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리고 세계로 전해진 연설을 통해 그는 선정적인 내용까지 들먹이며 북한의 인권 탄압 실상을 고발했다. 대한민국 국회를 마치 북한 성토장처럼 만들었다. 물론 전 세계가 북한이 독재국가이며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곳임을 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 인권은 아주 민감한 문제라서 신중하게 언급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권은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익과 목적을 위한 선전과 공격의 도구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치적 보수와 진보가 북한 인권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였던 것도 바로 이점 때문이었다. 국내 보수 우익과 소위 '북한 인권' 단체들이 지금까지 북한의 인권이 아니라 북한 체제 비난과 전복을 위해 '인권'을 이용했던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또 다른 문제는 인권 탄압 사례들이 객관적인 검증을 거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1995년 북한의 대홍수 이후 기아 사망자 숫자 또한 지금까지 정확히 검증된 수치가 없다. 미국 정부까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계속 갖다 써왔고 한 때는 200만 이상이 아사했다는 수치까지 있었다. 그런데 오늘 트럼프는 100만 명을 언급했다. 무엇을 근거로 수치가 수정됐는지 알 수 없다. 북한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탈북자, 북한 방문자, 북한 내 소문 등을 통해 수집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어느 국제단체도 현장에 가서 조사를 했거나 북한 내 인권단체가 조사를 해서 발표한 것이 없다. 다른 나라와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그러니 돌아다니는 데이터나 정보를 완전히 믿기가 힘들다. 요즘 말로 '팩트 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과장됐는지 어쩐지도 알 수 없는 정보들이 흔히 북한이 정당한 국가와 외교적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하고 북한을 '악마화(demonize)'하기 위한 근거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악마화' 담론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돼왔던 것이다. 오늘 트럼프도 검증 여부를 알 수 없는 정보까지 들이대며 북한 인권을 들먹였고 북한을 '악마화'하는데 공을 들였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연설은 교묘한 듯하면서 유치했다. 마치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듯하면서 북한에 대한 맹비난을 쏟아냈다. 그리곤 다시 북한과 비교해 대한민국을 찬양했다. 우리는 북한이 독재국가이며 인권탄압국이고 반인도적인 국가임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와 북한을 비교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폄하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관계를 회복하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모두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연설은 남북문제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힘에 기댄 미국 보수 우익의 시각을 대변했으며 우리를 어린애 다루듯한 것이었다.
트럼프의 북한 인권 소환이 어떤 후유증을 가져올지, 아니면 아무런 후유증도 없이 지나갈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데 우리 국회가 멍석을 깔아준 꼴이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쨌든 북한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데 말이다.
평화 구매?
인권 부분은 그렇다치고 연설의 다른 부분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는데, 다시 말해 우리 입장에서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안전을 확보하며 평화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나? 솔직히 내용상으로 보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언급하거나 노골적으로 '공격'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 기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이런저런 장식을 달았지만 연설의 핵심은 '무기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한반도 주변에 세 대의 항공모함이 배치돼 있고 거기에 F-35를 포함해 15대의 전투기가 실려 있다"거나 "핵잠수함을 배치해 두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무력에 기댄 압박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중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북한에는 '무력으로 이길 수 없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것이고, 남한에는 '안전을 보장해줄테니 미국을 믿고 무기를 많이 사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미국은...가장 새롭고 발전된 무기체계를 획득하고 있으며...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는 그의 말이다. 연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북한과 남한을 모두 겨냥한 것이다.
사실 정부는 트럼프의 구상에 이미 답을 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그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전날 정상회담에서 이미 핵잠수함과 최첨단 정찰 무기를 구입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미국의 압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자주국방'을 위한 것이었다. 어찌보면 트럼프의 무기 장사는 우리 정부의 구매 욕구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해석일지도 모른다. 정부는 '자주국방'을 내세워 첨단 무기 확보를 추진하고 있고 그것은 결국 무력 균형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 정부도 무기로 평화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기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하면 너무 이상적인 소리라고 응수하곤 한다. 그런데 무기가 하는 역할은 전쟁을 억제하는 것일뿐 전쟁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무기를 축적하는 것은 모두의 파멸을 가져오는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국지전은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사는 것이다. 또한 그에 동반되는 예산 지출, 국토 손실, 군사시설 군.민 갈등, 군사문화 강화 등 무시할 수 없는 사회 문제의 축적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평화는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다. 평화는 스스로의 부지런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평화는 남북대화와 관계의 개선, 군사 대결의 중단, 무기 경쟁의 중단, 그리고 나아가 평화협정과 군축까지 점진적이고 부단한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누구도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해줄 수 없고, 평화를 판매할 수도 구매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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