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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그 어려움에 대하여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7. 10. 14. 11:59
평화는 순진한 생각?
요즘처럼 '평화'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답답함을 느꼈던 적이 드문 것 같다. 평화학을 전공했고, 그후 계속 평화연구를 하면서 평화학 강의와 각종 평화교육을 하고 있고, 그래서 '평화'라는 단어를 많이 쓰게 되지만 사실 일상에서는 쉽게 쓰지 않아 왔다.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과 진지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항상 역동성과 희망을 느낀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평화를 생각하면 답답함이 느껴진다. 한반도의 긴장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 또는 평화적 접근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 시각,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거부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에서 평화적 접근을 얘기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평화를 언급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치부하는 것 같다.
그런데 평화는, 즉 평화적 감수성, 비전, 접근 등은 이런 상황에서, 다시 말해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 대화는 막혔고 적대감만 높아지며, 서로를 공격하는 것 외에 아무런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이런 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평화학이 왜 생겨났는지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평화학은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 없는 세상을 절실하게 원했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다. 평화를 상상하면서 전쟁을 거부하고 예방하는 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그것만이 인류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순진한 생각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의 손실과 삶의 공간 파괴를 막으려는 현실적인 생각에 기초해 생겨난 것이 평화학, 다시 말해 평화에 대한 탐구와 평화적 접근이다.
또 하나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9.11 테러 이후 미국사회는 복수에 눈이 멀어 있었다. 소수의 학자들, 운동가들, 시민들만이 복수가 아니라 사법적 정의의 실현과 평화적 접근을 얘기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순진한 사람들로 매도당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미국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결과는 현재 보는 바와 같다. 매 해 수천 명의 민간인 사망을 야기하는 아프간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이라크에서는 민족 사이 충돌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최악의 무장집단인 IS까지 등장했다. 이 모두가 무력 사용과 전쟁을 복수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 야기한 비극이다.
이것이 최선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군사적 긴장, 북한과 미국의 상호 말공격,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적대관계 지속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제 길을 가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를 무한대로 키워가고 있다. 그러면서 대화는 무한정 보류하고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리는 정책을 찬성하고 북한과 미국의 군사 및 언어 대결도 은근히 미국을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다. 아마 속으로는 '불가피하면 전쟁도 할 수 있다'거나 '할 수 있다면 미국이 김정은을 죽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평화적 접근이나 대화를 통한 해결을 언급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평화를 원하지 않아서가 않아서가 아니라 평화를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평화적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대화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은 위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평화는 평화롭거나 평화의 조건을 만들기 쉬울 때 상상하거나 입에 담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평화롭지 않기 때문에 상상하고 입에 담는 것이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평화의 필요를 절감하고 평화연구를 시작했던 사람들처럼, 그리고 9.11 테러 이후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평화적 접근을 주장했던 사람들처럼, 그리고 지금 전국 곳곳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평화적 접근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면서 평화를 필요로하고 상상하는 이 땅의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힘들어도 평화를 얘기해야 한다. 아니, 평화는 평화적 접근이나 비전을 상상하기 힘들 때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반드시 평화를 입에 담아야 한다. 평화가 절대 쉬워서가 아니라 그것만이 모두의 안전과 인간성 유지를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군사적 긴장과 상호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평화를 소리 높여 얘기해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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