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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는 안보 문제?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7. 4. 27. 11:31
사드 기습 배치, 치욕의 날
많은 사람들은 2017년 4월 26일을 치욕의 날로 기억할 것이다. 새벽 어둠을 틈타 미군은 성주 소성리에 사드배치를 강행했고 주민들은 경찰에 막혀 항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경찰은 미군과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물리력까지 동원해 소성리 주민들과 종교인들을 막았다. 참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미군이 공여받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국 땅을 밟아야 하는데 한국 경찰이 자국민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것을 도왔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국방부의 협조와 지원, 그리고 정치권의 무관심과 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만 봐도 국민 50% 이상이 사드배치를 반대했고 무엇보다 사드가 배치되는 곳 주민들이 강하게 저항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 일은 이 나라 정치가 얼마나 민심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법적, 행정적 절차를 진행한 것은 국방부다. 물론 그 뒤에는 청와대가 있지만 공식적으로 앞에 나와 모든 것을 주도한 것은 국방부다. 이런 상황은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관련 정책과 대응을 총괄하는 것이 실제 국방부라는 점이다. 작년 7월 8일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던 날 결정과정에서 소외된 외교부 장관은 백화점 나들이에 나서서 일종의 시위를 벌였다. 통일부는 아예 존재감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드배치가 미국, 중국, 일본, 나아가 러시아와의 외교 현안이고 북한과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 때문에 국방부가 대북 정책 및 대응과 관련된 모든 일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무력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국방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악의 경우 북한을 상대로 무력시위와 무기경쟁을 지속하는 것이고, 최선의 경우라고 해봤자 무력 균형에 기대 무력 충돌을 억제시키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본 이해나 비전도 없이 국방부는 그저 무력을 기준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볼 뿐이다. 이런 국방부가 대북 정책을 독점하고 있으니 서둘러 미군에게 사드배치를 위한 땅을 공여하고 경찰을 시켜 미군과 장비를 보호하게 조치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국방부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헌법은 대통령에게 '평화적 통일'의 의무를 지우고 있다. 이것은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는 것은 전략적인 접근일 뿐이고 북한은 기본적으로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상이 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겉으로 보면 모순으로 보이는 이런 상황을 조율해야 하는 것은 결국 정치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는 안 보이고 군만 보인다.
안보가 아니라 민생 현안
사드배치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선운동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대선후보들은 사드배치 문제를 온전히 안보 현안으로만 취급하기 시작했다. 한발 더 나가 군사력에 기댄 안보를 요구하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잃을까봐, 또는 자신이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후보임을 보여주기 위해 사드배치 현안을 이용했다. 사드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공격을 막는데 효율적인 무기인지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고 사드가 가진 '상징성'을 적극 이용한 것이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후보들은 사드배치 반대에서 찬성으로 말까지 바꾸며 '사드 사랑'을 드러냈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드와 관련된 많은 우려와 주장이 있지만 그중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사드배치가 일상 생활에 미칠 영향이다. 물론 나처럼 무기경쟁에 반대하거나 남북 긴장 고조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한반도 평화, 주변국과의 관계, 북한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 등에 더 관심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사드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무역보복이 가져올 경제적 파장, 성주 소성리와 인근 지역에 미칠 전자파 영향, 그로 인해 발생할 건강과 경제적 피해, 자기 종교의 성지가 입게 될 피해, 남북 긴장의 지속으로 인한 불안감과 스트레스 상승 등등이다. 정치적 언어로 바꾸면 바로 '민생' 현안이란 얘기다.
결국 사드배치 문제가 보여준 것은 정치권과 국민들의 두드러진 시각 차이와 정치권의 한계다. 솔직히 대부분의 국민들은 안보 이슈에 관심이 없다. 다시 언급하지만 국민들이 관심 있는 것은 일상의 문제고 사드배치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북한 문제, 그리고 무기와 관련됐다고 단편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사드배치를 여전히 안보 문제로만 취급하고 있다. 중국의 무역보복과 그에 따른 피해도 한동안 현안이 되더니 이제는 쏙 들어가버렸다. 이 문제는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전혀 얘기되지 않고 있다. 무역보복으로 인한 피해는 이곳저곳에서 꾸준히 쌓여가고 있는데 말이다.
수십 년 동안 국민들은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안보 장사에 이용돼 왔다. 안보 이슈는 등장할 때마다 다른 모든 현안들을 집어 삼키고 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어렵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후보들은 안보 장사를 하고 있다. 보수후보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정작 국민들은 안보가 아닌 일상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고, 사드배치 문제도 국민들의 안전한 일상과 관련해 이해하고 접근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말이다. 후보들은 비록 사드문제가 민생과도 관련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안보 현안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둘을 합쳐 진저리 나고 고루한 '국가 안보' 담론이 아니라 국민들의 안전한 삶에 초점을 맞춘 '인간 안보' 담론으로 접근하면 된다. 세계는 이미 오래 전 '인간 안보'로 이동했는데 우리만 냉전시대 초기 미국에서 생겨난 '국가 안보'에 매몰돼 있으니 말이다. 그 정도 인식도 없다면 대선후보로 정말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후보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많은 유권자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제 후보들은 사드배치가 가져올 국내.외 후폭풍에 어떻게 대응할지 상세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이니 '유감'이니 그런 안이한 소리는 집어치우고 말이다. 12일 후면 대통령이 될 것을 예상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 정도는 해야 염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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