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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만 보는 안보 프레임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7. 2. 16. 10:57
왜 그리 북한에 취약한지...
북한의 도발은 언제나 성과를 낸다. 거의 백발백중이다. 북한의 행동은 항상 이목을 끄는데 그중 북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지어 취약하기까지 한 영역은 정치권이다. 마치 살짝 건드리면 톡 터지는 봉숭아씨처럼 정치권은 북한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 마디에 적극 반응하고 대응책을 내놓는다. 물론 그 대응책이 한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즉흥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심지어 북한에 대응해 정책이나 입장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도 한다. 이번 일이 그렇다.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자 사드배치를 반대했던 국민의 당은 찬성 입장으로 선회하려 하고 있고, 차기 정부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유지했던 민주당은 "새로운 사실이 있는지 주의깊게 살펴보겠다"며 여지를 두고 있다. 사드배치가 졸속으로 결정됐고,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실효성이 의심스러우며, 심지어 최순실의 로비가 개입됐을 여지가 있다며 비난했던 정당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들의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만 속 터지는 상황이 돼버렸다.
조기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있다. 탄핵 인용이 100%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90% 이상 확실하다고 얘기하는 상황이니 조기 대선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북한의 중장기 미사일 실험은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안보 이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사실 가장 원망스러운 건 북한이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때만 되면 이런 식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선거 판을 뒤흔드니 말이다. 물론 북한에겐 나름의 합리적 계산이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북한을 제어할 수 없는 우리는 결국 우리 정치권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그렇게 북한에 취약하냐고... 물론 거기에는 안보 이슈를 이용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북한만 바라보고 안보 프레임을 만드는 무능력이 있다. 북한의 도발, 그리고 북한의 계산을 뛰어 넘는 안보 프레임을 개발하는 능력과 책임감이 없다. 쬐금 진보적이라는 야당도 여전히 북한을 핑계로 삼는 보수의 안보 프레임에 갇혀 있다. 자신들만의 프레임을 개발하고 그것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호소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선거 때만 되면 북한에 대응하는 안보 프레임에 휘둘리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핵개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등은 제법 복잡한 문제다. 북한의 이런 무기 개발이 우리의 안전, 그러니까 죽고 사는 문제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일반인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하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한 마디로 북한은 미국까지 위협할 수 있는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북한의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할 때마다 전 세계가 들고 일어나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니 북한의 무기 개발은 북한이 공격을 마음 먹으면 곧 우리는 물론 다른 나라에게도 죽고 사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북한이 개발한 무기를 사용해 꼭 공격을 감행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나라든 반드시 사용하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는 것이 아니고 적국과의 무력 균형이나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그러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협이 꼭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문제를 다뤄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대응에서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생긴다. 어떤 쪽은 지속적으로 무력 균형을 유지하는 대응을 택하고 또 다른 어떤 쪽은 기본적인 무력 균형에 덧붙여 무력 균형의 필요 자체에 도전하는 선택을 한다. 바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상대와 관계를 개선함으로서 무력 균형의 틀을 깨고 서로 이기는(win-win)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비전을 담은 안보 프레임 좀....
단언컨대 북한을 상대하는 싸움은 무기 대 무기의 싸움이 아니라 그 외의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고? 무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무한 무력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그럼에도 핵무기 보유에 임박한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며, 결국 남과 북 모두가 얻을 것이 없는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쪽이 모든 것을 가지는 제로섬(zero-sum) 게임도 아니고 그냥 모두가 쪽박 차는 패-패(lose-lose)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국방 예산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해 국방예산 지출은 38조 8천억 원으로 세계 10위였다. 올해 예산은 40조 3천 억원을 넘어섰다. 언제나 그렇듯 정부 예산의 10%다. 경제가 어렵고 복지와 일자리 등 생계와 관련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예산의 10%를 국방에 쏟에 붓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사정은 더 어렵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와 지속적인 경제 악화로 사람들은 굶어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은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력 경쟁과 관련해 남과 북 어느 쪽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선거 때마다, 그리고 중요한 사회 현안이 있을 때마다 터져 나와 모든 상식적, 합리적 논의를 삼켜버리는 안보 이슈에 정말 신물이 난다. 더 속 터지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를 주장하는 야당들조차 북한의 도발이 있으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대폭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는 것이다. 결국 무력 경쟁, 국가 안보, 애국심에 기댄 보수의 안보 프레임에 빨려들어가 버린다. 지지자들을 농락하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야당이 한반도 미래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런 비전을 가지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를 원한다면서도 즉흥적, 단기적 대응만 하고 장기적 비전은 내놓지 않는다. 심지어 평화적 공존에서 통일로 갈 것인지, 아니면 통일에서 평화적 공존으로 갈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방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평화적 공존과 통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 기조와 남북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것인지도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마치 잠꼬대를 하거나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평화'와 '통일'을 읊조린다.
그런데 정치권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권처럼 그렇게 북한에 민감하거나 취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북풍'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도 이미 증명됐다. 내 입장에서는 때로 그 무관심과 느긋함이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여 답답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마 그것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그리고 남북관계의 지속적 개선이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치는 이 나라 정치를 겪으면서 터득한 생존 전략이자 삶의 지혜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거기에는 국민들이 북한의 핵개발이나 미사일 발사, 또는 남북긴장 등에 관심을 쏟든말든 선거 때면 항상 안보 이슈가 다른 현안들을 집어삼키고, 정치권은 안보 프레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소수의 사람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요구해도 제 갈길만 가는 정치권에 희망을 걸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 국민들도 그냥 제 갈길을 가는 것이 그나마 손해보지 않고 이 나라에서 살아남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정치권도 대부분의 국민들도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에 대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러니 제발 이제는 이 비전 없는 상황을 벗어나보자. 특히 정당들은, 그리고 선거에 나오는 정치인들은 대선에서 표 달라고 할거면 제대로 된, 다시 말해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를 보장하는 안보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 뻔뻔하게 대충 얼버무리면서 '일단 믿고 찍어 주면 잘 하겠다'고 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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