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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핵실험, 분노하면 뭐하나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6. 9. 11. 18:28
분노? 분석은?
북한의 5차 핵실험은 충격이다. 지난 1월에 4차 핵실험을 했는데 8개월 만에 다시 핵실험을 해서 4차까지 이어지던 약 3년 주기의 사이클이 깨졌다. 4차 때처럼 사전 발표도 없었다. 이것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진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과 이런저런 눈치 안 보고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북한의 강한 의지를 말해준다. 설마했던 국제사회조차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인 모양이다. 강경한 어조의 비난, 긴급 유엔 안보리 소집, 강경 안보리 결의안 채택 결정 등 신속한 행보를 이어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4차와 5차 핵실험 사이의 짧은 주기보다 더 큰 충격은 4차 핵실험 이후 이뤄진 국제 제재가 아무 소용이 없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긴급히 소집된 안보리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것은 원칙적 입장과 주장일 뿐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솔직히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역할은 그냥 거기까지다. 어차피 직접 관련된 몇 나라를 제외하고 먼 나라 일이고 각자 자기 문제가 산더미니 말이다.
뒤통수를 얻어 맞고 가장 멘붕에 빠진 것은 핵무기 보유가 임박한 북한을 눈 앞에 둔 한국정부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인지 부적절한 말도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은 "김정은, 정신상태 통제불능"이라 했고 외교부 장관은 "북한 정권의 광적인 면 고려해 대응 방안 찾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말한 것에 화답하는 의미였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모두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발언은 아니다. 멘붕 상태에서, 그리고 분노를 삭히기 위해 한 말처럼 들린다. 하긴 대통령이 급히 라오스에서 돌아와야 했고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도 성과 없이 죽을 쑤고 있는 판에 더 강력한 핵실험을 했으니 안 그렇겠는가. 그런데 감정과 분노의 분출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냉정한 판단을 흐리게 할 뿐이다. 그리고 국민들 생각해서 그런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가장 속 터지고 화나는 것은 3차 핵실험 이후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젠 한반도에 '핵보유국'이 출현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간 일로 접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절망하고 있는 국민들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리고 외교부 장관이 그렇게 아마추어처럼 말하면 한숨만 나온다.
이런 와중에도 정부가 내 놓은 대응은 하나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을 더욱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과의 협력을 다짐하고 프랑스에도 협력을 구하고, 그리고 유엔 결의안 통과를 기다리고...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 거기서 항상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북한과의 접촉과 대화다. 솔직히 열심히 노력하면 북한과 접촉할 핑계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싸우는 상대는 외면하고 계속 주변만 들쑤시고 있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급속도로 진보하고 상황은 변했는데 정부의 대응은 맨날 그 나물에 그 반찬이다. 분노하지만 말고, 안이하게 국제사회 제재 운운만 하지 말고, 치밀하게 분석이란 것을 좀 해보면 좋겠다. 지난 3년 반 동안의 대북정책을 복기해보고 자기 정당화와 분노에서 빠져나와 국민을 위해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을 하면 좋겠다.
정부면 정부답게...
사실 정부만 북한에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왜 항상 벼랑 끝으로 일을 몰고 가는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제재만 부를 뿐 북한에 도움이 안 되는 길을 왜 가는지, 무엇보다 어쨌든 한반도에 살면서 왜 매번 한반도의 무력 긴장을 높이는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을 하지만 누구도 김정은과 얘기해 본 적이 없으니 속내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북한이 그리고 김정은이 '정신상태'가 이상해서, 또는 사춘기 소년의 일탈처럼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우방인 중국으로부터까지 비난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생존을 위해 나은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한국을 포함한 다른 모든 나라들과 국제사회의 눈으로 보면 비상식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면 대응책을 찾아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국제사회 제재나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쪽에게 계속 뻔한 얘기만 해봐야 소용없단 얘기다.
정부의 문제는 북한을 너무 자기 기준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북한에 대한 보수정부 특유의 증오와 분노도 섞여 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제는 3년 반 동안, 아니 이전 정부까지 합쳐 8년 반 동안 대북정책에서 죽을 쑤고 결국 5차 핵실험까지 야기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제외하고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부터 지금까지 모두 보수정권에서 이뤄진 일이다. 결과적으로 보수정권이 그렇게 싫어하는 북한의 무력 향상을, 그것도 핵무기 개발을 허용했다는 얘기다. 완전 자기모순이다. 그러니 이제는 북한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있어도, 속된 말로 더러워도 북한과 접촉하고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정말 1-2년 안에 핵보유국이 된 북한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러면 되돌길 길이 없다.
정부는 정부다워야 한다. 대한민국 직선제 대통령 중에 남북관계를 언급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사람은 없다. 지금의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남북관계 개선을 얘기했고 정권 초반에는 '신뢰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북한이 예상 밖의 행동을 해서 다 접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궁색하다. 어차피 그때도 북한은 예측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그런 변명은 씨알도 안 먹힌다. 그리고 이제 전문가들이 모두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핵실험에 대해 여전히 국제제재만 운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싸드를 언급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기정사실화 하겠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뭐라도 실효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정부다. 그래야 남북 긴장과 대립 때문에 수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 온 국민들에게 창피하지 않고 최소한의 체면이라도 지키는 정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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