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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전쟁에도 냉정할 것인가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7. 9. 27. 11:09
너무 냉정한 언론
한반도 긴장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높아졌는지 이젠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쨌든 지금은 긴장이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 군사적 충돌 위험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미국 대통령과 북한 외무상은 유엔 총회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선정적인 욕과 공격을 주고 받았다. 세계 평화를 논의하는 유엔에서 말이다. 급기야 미국은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 최첨단 폭격기를 북한 공해상까지 출격시켰다. 사실은 경고를 넘어 공격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든 언론이 이 문제를 보도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출격 사실 자체만 언급하거나 기사 말미에 잠깐 한반도 긴장과 위기 상황에 우려를 표했을 뿐이다. 일종의 장식품 정도로 상황 진단을 덧붙인 것이다.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와 북.미의 극한 대립이 지속되면서 한반도 긴장 고조와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언론의 보도는 놀랄만큼 냉정하다. 대부분의 보도는 마치 제3자의 눈으로 정세를 살피는 듯한, 그런데 사실은 정부와 미국의 기조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가장 놀랄만한 보도들은 미국의 무력 시위와 트럼프의 막말에 대한 것이다. 이제는 관행처럼 돼버린 미국의 남한 내 무력시위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그냥 당연한 듯이 보도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을 전제로 한 트럼프의 협박성 발언이나 유엔 총회장에서의 공격성 발언에 대해서도 별다른 평가나 비판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공식적인 적국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랬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정부와 미국의 대북 대응은 무력 충돌 가능성, 그리고 우리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그럼에도 거기에 대한 심층 분석이나 국민의 안전과 결부시켜 우려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 그런 얘기는 사설이나 외부 기고가의 글을 통해 간헐적으로 전해질 뿐이다.
친무기, 친전쟁 담론에 편승하는 언론
현재 한반도 긴장 상태에 대한 언론 보도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친무기, 친전쟁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미군 B-1B 폭격기의 북한 공해상 출격에 대해 대부분의 보도는 그 폭격기가 얼마만큼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와 비슷한 다른 전력은 무엇이 있는지, 더 위협적인 무력 시위는 향후 어떻게 이뤄질지, 다음엔 핵추진 항공모함의 출격이 예정돼 있다는 것 등을 언급했다. 무기에 대한 지식을 뽐내면서 미군의 최첨단 무기가 한반도에 출격한 것을 반기는 투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우리 정부는 왜 미국의 위험하고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무력 시위를 허용했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향후 한반도, 아니 우리가 직면할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틀 정도 뒤에는 북한이 B-1B의 출격을 알지 못했다는 것과 B-1B가 북한에게 실제 위협이 된다는 등의 내용을 정부, 국방부, 군사전문가 등의 말을 인용해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그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실제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를 하지 않았다.
언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정치권의 전쟁 담론에 대해 전혀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수 야당이 전술핵 배치나 핵무기 개발을 주장해도 정치권 뉴스의 틀 안에서 정당의 이해관계와 연결시킨 협소한 접근을 할 뿐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국민들의 안전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정치권이 국민들의 안전을 담보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도 되는지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언론은 현재의 한반도 긴장 상황을 비집고 대두되는 정치권의 친무기, 친전쟁 담론을 묵인해주고 일부 언론은 거기에 편승하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언론은 '중립성'을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평화'라는 가치지향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언론이 할 역할은 아니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론은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무엇이 정의이고 옳은 일인지 가치지향적인 판단을 하고 그에 따라 보도한다. 그런데 왜 한반도 평화나 무력 충돌, 나아가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독 중립성과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사실은 보수 정치인들처럼 북한에 대한 적개심에 찌들어 있는 것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대부분의 국민들처럼 '휴전'상태인 나라에서 살다보니 전쟁이나 무력 충돌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언론이 윤리적 문제로 삼고 있는 전쟁 반대와 국제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마치 가치지향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인도주의 및 모든 인간의 평화적 생존권과 관련된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북 긴장관계에서 살았고, 지금은 미국과 북한의 대립에 끼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그런 감각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언론의 후진성과 도덕적 결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는 남한, 미국, 북한 사이에서 편들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 및 첨단무기의 위협 하에 있는 한반도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이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고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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