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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빌딩과 한반도평화 7 힘의 불균형 문제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9. 1. 4. 11:02
힘의 관계와 대화
피스빌딩 과정에서 항상 마주치는 것은 갈등과 대립이다. 이것을 끝내는 과정에서 폭력을 줄이고, 대화 기회를 만들며, 평화 회복과 지속의 방향에 맞춰 협상과 합의를 하는 것이 피스빌딩의 핵심이다. 말은 쉽지만 아주 어렵다. 그래서 한반도에서도 남북 대립과 갈등이 계속됐던 것이다. 한반도가 한국전쟁 때부터 이런 피스빌딩 과정을 거쳤다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됐을 것이다. 물론 한반도에서의 피스빌딩을 도와주는 외부자도 없었고, 더군다나 내부에서는 여전히 대립에만 관심을 쏟았기 때문에 긴 세월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갈등과 대립을 끝내기 위한 대화와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균형이다. 힘의 불균형이 심하면 상대적으로 강한 쪽이 대화보다 힘을 통한 해결을 원한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렇게 해야 향후에도 상대를 찍소리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에 목마르고 열심히 메시지를 보내는 쪽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약한 쪽이다. 계속 싸우려면 시간, 에너지, 자원이 소비되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여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약한 쪽은 그래서 상대와 마주앉기 위해 상대가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수준으로 자기 힘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 모든 개인, 집단, 사회 갈등에서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런 힘의 관계는 북.미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고 결국 대화자리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힘의 불균형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 상황은 원초적인 힘의 불균형이 대화와 협상에 미치는 결정적인 영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중간자의 역할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대화와 협상의 교착상태를 깨기 위해 미국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언제든 또 다시 미국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트럼프에게 친서도 보냈다. 이것은 김정은이 배포가 크고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미국의 트럼프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년사에서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북한의 인내심을 오판하고 제재와 압박만 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토를 달았다. 그러나 이 역시 힘이 약하기 때문에 붙인 사족에 가깝다. 상대가 보지 못하는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굳이 알려주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미 대화와 협상이 교착상태에 이른 것은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북한은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했지만 경제 발전과 국제사회 진입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제 더 이상 내밀 카드도 없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한때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찔끔 눈을 감았던 미국은 이런 북한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강자의 여유를 보이며 약자의 속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킬 진정성 있고 능력 있는 중간자다. 물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전 세계에서 남한 밖에 없다. 남한의 이익이 같이 걸려 있기 때문이고, 다행히 북.미 모두가 그 역할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북한을 가자미 눈으로 의심을 품은 채 보고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키려면 특별히 약자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강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힘을 키우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중립적' 역할은 멋져 보이지만 사실상 공정하지 않다. 성공적인 대화와 협상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상대적으로 약한 쪽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 사이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해 남한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눈치도 봐야 하고 겨우 회복된 북한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해야 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해야 하는 일이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한은 북한과 이익을 공유하는 일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북한의 불이익이 결국 남한의 불이익이 되고 남북이 운명공동체가 되는 상황까지 가야 한다. 북한이 남한과의 이익 공유와 운명공동체를 지렛대로 힘을 키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 남한의 불이익이 결국 미국과 국제사회의 불이익이 되는 상황이 돼야 한다. 그래야 북.미 관계에서 약자인 북한이 미국과 제대로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다. 쉽지 않고 전략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지만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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