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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회담 결렬, 뒤통수 맞은 한반도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9. 3. 1. 10:59
예상을 빗나간 판 깨기
북미 회담 결렬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희망' 때문에 그랬고, 전 세계 사람들도 결렬은 예상하지 못했다. 합의문도 마련돼 있었고 그것이 한 미국 언론을 통해 공개까지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변했고 결국 양국 정상은 예정됐던 오찬도 하지 않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후 트럼프의 일방적 기자회견으로 공백이 생겼던 진실은 한밤중 북한 외무상의 기자회견으로 메워졌다. 겨우 퍼즐이 맞춰진 것이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는데 미국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기자회견을 통해 재구성된 전체 스토리를 보면 미국은 미리 합의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외에 막판에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그러자 북한이 그렇게 하려면 모든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얘기했을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이 추가 요구를 한 것을 잘라 먹고 마치 북한이 처음부터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해 회담이 결렬된 것처럼 얘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일부 제재 해제를 전면 해제로 확대 해석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진실이든 미국이 불성실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김정은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북한은 미국이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와 일부 제재 해제 조건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고 응수했다. 결국 회담의 관례를 깨고 막판에 한 가지를 추가해 끝까지 요구한 미국이 판을 깬 것이다. 북한의 '벼랑끝 협상' 명성을 미국이 가져간 꼴이다.
물론 협상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그러나 협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판을 완전히 깨지 않고 상호 양보 내지 타협하는 선에서 합의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한 트럼프는 그렇게 하길 원치 않았다. 상대를 압박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내려고 했다. 가장 성실하지 못한 협상자의 태도고 신뢰를 깨는 행동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것(영변 핵시설 영구적 완전 폐기)은 조-미(북-미)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해화 조치다"라는 북한 외무상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트럼프는 신뢰 수준에 비해 너무 큰 요구를 한 것이다.
뒤통수 맞은 한반도
이번 회담 결렬은 북한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트럼프에게, 아니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사실 트럼프는 처음부터 합의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협상과 합의는 신뢰의 수준에 따라 점진적이어야 하는데 북-미 관계의 수준에서 미국 여론과 정치권이 원하는 수준의 합의를 얻어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가 비난받을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과 트럼프에 대한 반감 때문에 트럼프의 실패를 바랐던 미국 언론은 정말 실패하자 '트럼프의 실패'라며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트럼프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 외교의 실패다. 그리고 우방인 한국에 대해서도 아주 불성실하고 배신감을 준 행동이다. 북한이 들고 나온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를 받지 않음으로서 '비핵화'로 가는 걸음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 전체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북한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경제 발전을 위해 핵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더 이상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 협상의 우위를 가지게 됐고, 북한에게 아무 것도 해주는 게 없으면서 최대한으로 얻으려고만 하고 있다. 주고받기의 협상이 아니라 거의 제로섬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공은 다시 남한으로 넘어왔다. 트럼프는 뻔뻔하게 다시 중재를 요청했다. 그것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을 설득해달라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는데 어떤 중재를 할 것인지가 더 핵심이다. 미국의 편을 들어 북한을 설득하면 남-북 관계까지 경직될 수 있다. 북한 편을 들어 미국에게 말하면 트럼프는 삐져서 완전히 '삐뚤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결국 우리의 이익이다. 그리고 그 이익이 북한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결국 남북은 운명공동체기 때문이다. 그것을 미국에게도 강조해야 한다.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와 평화로 가는 중요한 한 걸음을 기대했는데 우방인 미국이 그 기대를 저버렸음을 얘기해야 한다. 그로 인해 남한 사람들 사이에 실망감과 반미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의 인내심도 한계가 있음을 알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북-미 협상에서 약세에 놓인 북한의 힘을 키워줄 방안까지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협상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동안 정부가 너무 미국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이익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한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 미국에게 설득, 회유, 압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다 같이 뒤통수를 맞으며 계속 자괴감을 느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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