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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방식평화갈등 이야기 /한반도평화 & 평화통일 2019. 6. 25. 17:22
6월 25일이다. 이른바 '6.25 전쟁 기념일'이다. 두 개의 주요 포탈인 네이버와 다음은 똑같이 "참전용사를 기립니다"라는 말을 내걸었다. 이 표어는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방식과 관련해 여러가지를 말해준다.
6.25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한국전쟁의 핵심은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평가를 들이대도 그것은 '전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쟁의 핵심은 무수한 피해자를 만든다는 것이고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한국전쟁도 그랬다. 셀 수도 없는 피해자와 계산할 수도 없는 개인적, 사회적 피해를 만들었다. 한반도 전체가 처참하게 망가졌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한국전쟁이다. 그렇지만 "참전용사를 기립니다"라는 말은 '국가를 위한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전쟁을 기억함에 있어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싸운' 군인들의 '애국심' 또는 '충성심'이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두 개의 포털사이트가 똑같은 말을 내건 것을 보면 이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이해인 것 같다.
한국전쟁의 가장 큰 비극은 너무나 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군인보다 3-5배나 많은 민간인들이 사망, 학살, 부상, 실종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것은 한국전쟁이 용감한 군인들을 기억해야 하는 전쟁이 아니라 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기억해야 하는 부끄러운 전쟁임을 말해준다. 냉정하게 말하면 군인은 전쟁을 수행하는 인적 자원이자 도구다. 군인의 죽음은 전쟁의 당연한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군인의 최우선 임무는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군인의 역할도 처음엔 그랬다. 남침한 인민군을 막고 다시 북쪽으로 밀어낸다는 것은 국토 수호는 물론 최대한 민간인을 보호하고 피해를 줄이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서울 수복 이후 미군이 중심이 된 연합군과 국군의 목적은 변질됐다. 북한이 퇴각하는 것을 기회로 북진을 해 한반도에서 완전히 공산정권을 없애고 '북진 통일'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로 인해 생길 전쟁의 장기화나 민간인의 피해는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전협상을 시작한 이후에도 협상이 길어진 이유는 이승만 정권이 '북진 통일'을 내세우며 기본적으로 정전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협상이 길어지는 사이 전선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고지를 사수하고 빼앗기 위해 죽고, 민간인들 또한 계속 목숨을 잃고 고초를 겪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싸운 군인들만 기억했다. 그것만이 '공식적'으로 기억할만한 것으로 취급됐다. 그런 방식의 기억은 '국가 안보'와 '애국심'에 기댄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얘기할 때 기억해야 할 사람들은 군인들보다 자신을 보호할 아무런 수단과 방법도 갖지 못한채 죽어간, 군인보다 몇 배나 많은 피해를 입은 무수한 민간인들이다. 전쟁통에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고, 심지어 미군과 국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마을과 지역조차 좌.우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죽이는 바람에 목숨을 잃고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슬프고 한많은 기억과 삶이다. 그러나 그렇게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과 가족들의 기억과 피해는 여전히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다. 공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군인들의 희생만 기억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말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위해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안보, 영토 수호, 애국심을 강조하고 북한에 대한 증오와 이념 대결을 부추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북을 막론하고 처참한 전쟁을 겪고 피해를 입은 사실을 공유하기 위해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정치적 실패로 인한 전쟁 때문에 피해를 본 평범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참전 용사'가 아니라 이름 없이 무수하게 죽은 '평범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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