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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해결, 정의와 무관한가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8. 5. 17. 11:42
갈등해결, 약자의 정의 외면?
간혹 갈등해결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양보와 타협만을 강요하는 문제해결 방식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정의'의 문제다. 세상의 많은 문제와 갈등에는 분명 잘못한 쪽과 잘한 쪽이 있을텐데 갈등해결은 모든 당사자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그럼으로서 '정의로운 해결'이 아니라 잘못한 쪽, 특별히 힘 있는 강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힘 없는 약자의 항복을 받아낸다고 생각한다. 대화와 합의 등 겉으로 강조되는 내용을 보면 그런 오해를 할 만도 하다. 그러나 감히 단언하건데 갈등해결은 정의를 외면하지도 않고 약자의 억지 합의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되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갈등해결'로 불리는 방식이 아니다.
갈등해결은 당사자들이 대화, 협상, 합의의 과정을 거쳐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자발적이고 동등한 참여와 자신의 이익과 필요를 충족시키는 해결책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사자들은 대화자리에 앉기를 거부하고 적인 상대와의 대화와 협상을 '항복'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흔히 생기는 실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힘의 차이가 큰 경우 힘 있는 당사자는 대화를 거부하고 힘 없는 당사자는 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설사 그들이 대화를 시작한다 해도 힘 있는 당사자에게 유리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또한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밝히는 것은 대화의 주제가 되지도 않고 그것을 판단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갈등해결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힘의 차이가 큰 당사자들 사이의 대화, 협상, 합의를 잘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갈등해결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당사자들이 각자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 정의의 문제 등을 주장하고 상대의 응답을 끌어낼 수 있도록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갈등해결 과정이 없으면 묻힐 수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과정으로 인해 드러나고 다른 당사자에게까지 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은 특별히 약자의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절차가 된다.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이 핵심
갈등해결 과정이 정의를 위한, 특별히 강자의 이익만이 아니라 약자의 정의를 위한 해결 방식이 될 수있는 첫 번째 이유는 과정이 곧 갈등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약자의 문제 제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 두 번째 이유는 과정이 다양한 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강자에게 뿐만 아니라 약자에게도 동등하게 자신의 주장과 필요를 얘기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정은 약자가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 이유는 갈등해결 과정의 우선적 목표 중 하나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힘의 차이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약자의 문제 제기, 입장, 이익, 필요 등도 동등하게 취급되고 정보와 지식의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힘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과정 초반에는 적극적으로 약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역량을 높이는 노력이 기울여지기도 한다. 이렇게 제대로 설계되고 진행되는 과정은 절대 약자의 정의를 외면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모두의 정의를 위한 과정이 된다.
갈등해결이 모두의 정의를 위한 과정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만드는 가장 큰 책임은 제3자 역할을 하는 진행자나 조정자가 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제3자의 중립성이 강조되곤 한다. 그런데 사실 제3자는 중립성을 넘어 독립성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때로 힘 있는 당사자의 압력과 회유, 그리고 힘 없는 당사자의 강한 문제 제기와 저항까지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갈등해결 원칙과 바람직한 제3자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독립성을 가지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의 정의를 충족시키는 과정을 만들고 진행할 수 있다.
이런 갈등해결 과정은 절대 누구의 정의도 외면할 수 없다. 특별히 약자의 정의을 외면할 수 없다. 과정에서 누군가의 정의, 특별히 약자의 정의가 외면된다면 그것은 왜곡된 갈등해결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갈등해결은 결국 강자의 이익을 위한 과정이 아니고 약자의 정의만을 위한 과정도 아니며 모두의 정의를 위한 과정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갈등해결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되는 만능 기제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법적으로 잘, 잘못을 명확히 판단해야 하는 경우, 힘의 불균형이 극심하게 드러난 경우, 강한 쪽이 약한 쪽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과정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등등에는 갈등해결 과정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런 모든 문제를 해결 내지 분리하고 당사자들 사이 대립의 문제만 다룰 경우, 또는 긴 사전 과정을 통해 힘의 차이를 축소시킨 이후에는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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