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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소통의 체계화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8. 3. 13. 16:57
소통, 공동의 책임이지만....
갈등과 갈등해결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면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소통'이다. 소통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갈등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소통은 간단히 말해 '서로 생각과 뜻을 잘 전달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서로'다. 소통이 한 사람의 일방적 행위가 아니라 상호적인 행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소통의 결과에 대해서는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 소통의 방식에 문제가 있든, 수단에 문제가 있든 서로 생각과 뜻을 잘 전달하고 이해하는 데 실패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소통이 공동의 책임이 되려면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이뤄진 사이에서의 소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A와 B가 소통한다면 어느 누구도 상대의 힘 때문에 제대로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불편하거나 안전하게 생각되지 않아 마음에 남겨두거나 미뤄두는 것도 없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만 소통은 공동의 책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갈등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다. 힘의 불균형이 제법 심할 경우 상대적 강자는 할 말을 다 하고, 반면 상대적 약자는 상대의 힘과 그것이 가져올 영향을 고려해 할 말을 자유롭게 다 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더한 경우는 상대의 힘에 눌려 제대로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왜 말을 안 했어?" "말 안한 네가 잘못이다" 등의 말로 힘이 없어 제대로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 말이다. 이런 경우 소통은 갈등해결의 열쇠가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통의 공동 책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다.
소통의 체계화
그렇다면 소통은 개인의 영역과 책임 하에서만 존재하는 문제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정부에서부터 기업과 단체까지 소통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흔히 소통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는 실수를 범한다. 사소한 문제가 있을 때건 심각한 갈등이 있을 때건 말이다. 공적인 일과 관련된 경우에도 일을 맡은 개인에게 소통의 책임을 지우고, 힘의 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서도 약자에게 소통의 책임을 묻는다. 나아가 갈등의 원인 제공자, 또는 흔히 말하는 트러블 메이커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이렇게 소통을 개인화하고 책임을 묻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절대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봉합하거나 방치하는 것만 가능하다. 약자가 더 이상 목소리를 내는 것을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회 조직이나 공동체에서는 소통을 개인화하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체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통의 체계화는 상대적 강자의 일방적 목소리를 제어하고 상대적 약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약자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고 목소리를 낼 공간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소통의 체계화는 문제가 조기에 드러나게 함으로서 갈등을 예방하거나 선제적으로 갈등에 대응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다.
정부나 공공기관에는 소통을 못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신의 일상이 이뤄지는 조직과 공동체에서는 소통을 소홀히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통이 갈등의 원인이 되는 일이 흔하고 동시에 갈등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문제가 있을 때가 아니라 없을 때 소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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