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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갈등 관리 또는 해결?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7. 11. 1. 10:42
신고리 공론화위, 모델 케이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또는 재개를 결정하는 공론화 과정이 끝났다. 최종 결과가 발표된 후 2주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아득한 옛 일처럼 생각된다. 공론화 과정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갈등해결을 전공하고 연구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많은 생각과 분석을 하게 만든 과정이었다. 최종 결과 발표 직후의 사회적 반응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사 재개와 중단 의견의 의미 있는 차이 때문에 이의 없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또한 미래의 원전 축소에 대한 높은 지지율 때문에 현명한 판단이 내려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양측 의견 차가 크지 않을 경우 큰 사회갈등이 생길 것을 우려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안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공론화위 설치와 시민참여 과정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한 평가가 내려지는 것, 그리고 갈등관리의 모델 케이스로 삼아야 한다는 평가까지 이뤄지는 것을 보면 좀 당황스럽다. 솔직히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 것은 애초 계획이 치밀하게 잘 세워져 있었고 시민참여단의 토론 과정이 거의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천운' 같은 것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 지나치게 긍정적인 평가도, 모델 케이스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일단 접어두고 깐깐하게 비판적 평가부터 해봐야 한다.
비판적 평가를 위해 반드시 지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부족한 시간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지적하고 우려했던 것이기도 하다. 두 개의 원전, 그리고 미래의 에너지산업 방향까지 관련된 문제에 대한 결말을 도출하는 데 3개월이란 시간을 부여한 것은 사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시간을 정해 놓으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탁상 행정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정해진 일정 때문에 힘든 3개월을 보냈을지 생각하면, 그리고 더 나은 과정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을지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부족한 시간의 문제는 공론화위가 효율적인 갈등해결 기제가 되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를 야기했다. 공론화위 자체의 상세하고 분석적인 갈등 조사와 분석을 건너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공론화위가 원전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데이터와 주장을 수집해서 객관적인 데이터와 정보를 만들어 시민참여단에게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 결과 시민참여단은 재개 또는 중단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방적이고 부분적인 데이터, 정보, 주장을 동원하는 대립하는 이해당사자들의 발표와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졌다. 팩트 체크를 할 수 없어 답답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전문가가 제시한 데이터와 주장, 그리고 객관적인 데이터와 정보 등을 참고해 시민참여단 스스로 공동의 데이터와 주장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시민참여단에게는 전문가들의 주장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의무만 주어진 것이었다.
시간의 부족은 시민참여단의 토론의 부족과 합의 기회의 상실로 이어졌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전체 토론과 그룹 토론이 이뤄졌고, 시민참여단은 자기 그룹 밖 참여자들과는 거의 교류와 토론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결국 참여단은 짜여진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과만 소통하고 토론하는, 즉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고 사안마다 스스로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셈이다.
합의의 부족은 공론화 과정을 '갈등해결' 과정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갈등해결'은 그 자체로 이해당사자들의 대화와 합의, 즉 두 당사자들 사이의 동의(agreement), 또는 다수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consensus)에 의한 갈등의 해결을 의미하고, 되도록 직접 갈등의 영향을 받고 대립하는 당사자들 사이의 해결책 모색과 합의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사실 이번 공론화 과정은 작은 규모의 대의민주주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합의, 또는 차선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높은 동의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무조건 더 많은 동의를 얻은 쪽의 손을 들어주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 이해당사자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대신 결정을 한 것이기에, 그리고 직접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가 적극 수용될 수 있는 적절한 환경과 수단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이해당사자들에 의한 갈등해결은 대의민주주의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하나로 이해되는 데 이번 공론화 과정은 그렇게 보긴 힘들다.
갈등해결의 기제가 되려면...
부족한 시간과 압축되고 신속한 과정으로 최선의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예상 밖의 결과를 냈다는 점 때문에 이번 공론화 과정을 모델 케이스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부족한 부분과 문제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을 마치 공론화 과정의 표준 기간처럼 여기는 것은 더 적절치 않다. 현실적인 도전을 고려해 합의 또는 70, 80 퍼센트의 동의가 아니라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이것을 '갈등해결'의 모범인 것처럼 주장하거나, 또는 직접 이해당사자가 분명히 드러난 공공갈등을 공론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할 수도 있다.
공론조사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이번 공론화 과정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기제도, 가장 이상적인 기제도 아니다. 전 사회가 관련된 사안이나 장기적으로 사회가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사안을 다루기 위해 시민들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하고 표본 의견을 생산할 수 있는 효율적인 기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선 적극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기제가 아니라 소극적으로 갈등을 관리하는 기제, 그것도 특정 사회 현안의 장기적 방향이나 의견을 수렴하는 기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공론화 과정을 정책 결정에 참고하기 위해 여론을 수렴하는 도구가 아니라 적극적인 갈등해결의 기제로 발전시키고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가 충실하게 보완되고 실행돼야 한다. 하나는 공공갈등 현안과 관련된 직접 이해당사자들을 어떻게 참여시키고 그들의 갈등을 다룰 것이냐다. 그러기 위해 직접 이해당사자들을 불러 모은 대화 및 조정의 과정을 사전 또는 공론화 과정과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공론화 과정의 시작 전에 또는 시작과 동시에 갈등 조사 및 분석 과정이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100 퍼센트 합의는 아니지만 합의에 버금가는 결과를 내기 위한, 다시 말해 다수결을 벗어나기 위한 상세하고 조직적인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참여단에게 주장을 듣고 거기에 대응하는 수동적 역할이 아니라 다양한 데이터와 정보를 접하고 난 후 공동의 데이터와 정보를 만들 수 있는 적극적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공론화 과정에 대한 성급한 판단이나 추가 실행보다는 비판적 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한 번의 실험을 잘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공론화는 국민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조금 더 확장된 방식으로 여론을 추출하는 방식으로만 활용될 수 있다. 또는 직접 이해당사자가 드러난 갈등을 봉합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갈등을 소극적으로 관리는 해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활용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사회 갈등을 해결하거나 줄이는데 기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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