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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형성과 해결의 조건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7. 11. 22. 15:02
갈등 형성의 조건
갈등에 대한 강의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갈등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생기는 문제를 모두 '갈등'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갈등이 되려면 몇 가지 기본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갈등이 되려면 당사자들이 문제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쪽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갈등이 될 수 없다.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적 약자는 문제를 인식하지만 상대적 강자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불편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상대방이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직접 문제를 제기하거나 표현해야 한다. 다음으로 갈등이 되려면 상호작용이, 그러니까 서로 문제를 인식하고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과 생각과 표현을 주고받는 것이 어느 정도 진행돼야 한다. 덧붙여 서로 상대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것은 당사자들 사이 힘의 불균형이 극심하지 않은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즉 상대적으로 강한 쪽이 다른 쪽을 힘으로 완전히 억압하거나 배제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약한 쪽이 전혀, 또는 상대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할 정도의 의미 있는 대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의 불균형이 심하다면 갈등은 생길 수 없다.
이렇게 힘의 불균형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갈등이 아니라 상대적 강자의 억압과 상대적 약자의 침묵, 그리고 때로 상대적 약자의 일시적 저항과 상대적 강자의 조기 제압이 있을 뿐이다. 갈등이 형성됐다는 것은 이런 극심한 힘의 불균형에 균열이 생겼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갈등은 전혀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약자에게는 오히려 긍정적인 상황이 된다.
갈등해결, 만능이 아니다
갈등 형성의 조건을 보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생기는 문제를 '갈등해결'이라는 기제, 다시 말해 당사자들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가능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일단 갈등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갈등해결'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 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극심하면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당사자 사이의 대화와 합의가 이뤄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강자가 자신의 이익, 절차적 정당성 확보, 보여주기 등을 위해 상대적 약자를 대화의 자리로 불러들이고 상대적 약자는 불가피하게 대화의 자리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들이 대화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갈등해결'이 시도될 수 있으려면 먼저 당사자들 사이에 극심한 힘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돼야 한다. 이를 위해 당사자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적 문제 제기나 저항, 또는 주변인, 제삼자, 여론 및 언론 등을 활용한 문제 제기 등이 있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주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힘의 불균형을 해소할 때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약자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강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으므로 약자가 강자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우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것은 결국 강자의 상대적 힘이 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힘을 키우는 것이 힘들다면 인위적으로 힘을 키우는 과정이 진행돼야 한다. 주변의 지지, 여론과 언론의 관심, 제삼자의 투입,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의 설계와 진행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방식이 상대적 강자에게 불공정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불가피한 절차다.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대화, 논의, 협상, 합의가 이뤄질 수 있고 과정의 정당성은 물론 결과의 정당성도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해결'은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항상 적용될 수 있는 만능 접근이 아니다. 갈등해결이 시도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당사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주도권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즉 상대적 강자를 상대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 또는 상대적 약자가 지원을 받아 부족한 역량을 채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라야 갈등해결은 비로소 투명하고 공정하게 시도될 수 있고 문제해결 기제로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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