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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만드는 정부, 제발 그만!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7. 5. 12. 10:51
갈등 공화국의 레시피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이 취임했다. 보궐선거다 보니 선거 하루 후 새 정부를 보게 됐다. 아니 사실은 아직 구성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는 높다. 지난 해 가을부터 거의 반 년 이상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고, 매일 시간 단위로 뉴스를 검색하고, 그것도 모자라 정치권의 헛발질을 감시하고 염장지르는 일을 직접 제재하며 시민들이 만들어 낸 새 정부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먼 과거로 후퇴시켰던 정부를 바꾸고 정부 기능을 정상화시키게 됐으니 기대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제일 관심 있는 것, 아니 새 정부에 간곡하게 요청하고 싶은 것은 제발 갈등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갈등 공화국이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리고 그것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정부다. 단지 지난 정부, 그리고 그 전의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정부가 그랬다. 공공정책이나 공공사업을 둘러싸고 생긴 '공공갈등'이 거의 모두 정부의 일방적 결정과 밀어붙이기 행태에서 비롯됐다. 그렇게 생긴 갈등은 해결은 고사하고 공공기관과 시민당사자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와 협상도 없이 오랜 시간 대결 양상을 낳았다. 대부분의 갈등은 항상 두 가지 방식으로 결론이 났다. 하나는 정부의 일방적 결정이나 사업 시행으로 일단락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격렬한 저항과 공공기관의 무대응 또는 대화 거부 등으로 장기화된 것이다. 한 번 갈등이 생기면 장기화되고 그 와중에 다른 갈등이 생기면서 갈등은 쌓여갔고 대한민국은 갈등이 차고 넘치는 사회가 됐다. 이것이 바로 갈등 공화국을 만든 아주 간단한 레시피다. 그렇게 만들어진 갈등의 맛은 아주 쓰고 매우며 다수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고 몸 전체를 망가뜨리곤 했다. 갈등을 겪은 공동체는 정상으로 복귀하지 못했고 마을과 사람들의 관계는 파괴됐다.
사실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대부분의 사회가 우리와 비슷한 과거를 겪었고 현재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갈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회에서는 우리처럼 공공갈등을 만들지도 대응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갈등이 생겨도 공동체와 개인의 삶이 파괴되고 결국 사회전체가 물질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고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등, 예방과 적극 대응이 답공공기관 실무자들은 대화와 협상, 그리고 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이론일 뿐이고 정책이나 사업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공공이익이 침해받고 오히려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모두를 위해 일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때로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언뜻 타당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다수의 갈등을 통해 증명됐다. 특정 정책이나 사업을 실행하는 공공기관이 아무리 공공이익을 주장해도 영향을 받는 시민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면서 갈등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이에 공공기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갈등이 악화돼 오히려 일정은 더 느려지고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공공기관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일정을 짜도 결국 시민 당사자의 협조가 없으면, 그리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계획대로 진행되기 힘들다는 얘기다.시대는 변했고 시민의식은 높아졌다. 때문에 아무리 공공기관이 공공이익을 역설해도 직접 영향을 받는 시민 당사자는 왜 자신만 또는 자기 공동체만 그 공공이익에서 배제되고 희생돼야 하는지 이의를 제기하고 그런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민주사회에서는 당연한 질문이고 권리다. 민주사회 구성원 누구나 자신의 재산, 건강, 주거 등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이제 그것을 모두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공기관에게 남은 선택은 갈등을 예방하고 갈등이 생겼을 경우엔 적극적으로 대응해 성실히 대화와 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정부가 한 가지만 결심해도 갈등 공화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로 '갈등을 만들지 않는 정부'가 되겠다는 결심이다. 여기에는 압축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다. 하나는 정책이나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전에 영향을 받는 다양한 집단이나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갈등에 직면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대화와 합의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갈등을 예방할 수 있고 갈등이 생겨도 신뢰와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민을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과 사업 실행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정책이나 사업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봐야하고 겸손하게 듣고 응답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제발 새 정부는 적어도 '갈등을 만드는 정부'라는 얘기는 듣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갈등에 적극 대응하고 잘 해결하는 정부라는 평가를 듣기 바란다. 이 바람은 사실 정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불가피하게 공공갈등에 직면할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그로 인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파괴되는 일은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평화갈등 이야기 > 갈등해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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