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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갈등해결 연재 6 재산권 vs. 공공이익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7. 2. 6. 14:15
재산권 보장 vs. 님비
공공갈등, 그러니까 공공정책 결정과 실행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에 생기는 갈등은 많은 경우 재산권 문제와 결부된다. 특별히 정책이 물리적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거의 백퍼센트 재산권 문제가 관련된다. 대상이 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땅, 집, 가게 등의 가격 및 매매 등이 직접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 거주지 이전, 보상 수준 등의 문제가 부수적으로 따라오지만 그런 문제들 또한 직접, 간접으로 재산권 문제와 관련돼 있다. 때문에 특정 정책이나 사업이 개인의 재산권에 얼마만큼 심각한 영향을 미치느냐가 시민 당사자의 저항과 공공기관과의 대결 수준을 결정하는 주요한 변수가 된다. 재산권 문제는 생존까지는 아니어도 현재의 생활은 물론 자손들의 미래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니 시민 당사자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권리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리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공공갈등의 대부분이 재산권과 관련돼 있다.
헌법 23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2항에는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써 있고, 3항에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써 있다. 내가 법학자는 아니지만 해석해보면 개인의 재산권은 보장되지만 공공복리, 다시 말해 공공이익에 반하거나 공공필요에 의해 제한될 수 있고, 그렇지만 그럴 경우에도 반드시 보상은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공공갈등은 이에 대한 해석이 충돌하면서 발생하고 악화된다.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공공기관은 주로 2항과 3항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시민 당사자는 날벼락 같은 정책이나 사업이 결정되면 1항을 들어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면 공공기관은 2항과 3항에 따라 1항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한탄강댐 갈등, 밀양송전탑 갈등, 제주해군기지 갈등, 부안 방폐장 갈등, 제주 제2공항 갈등, 사드배치 갈등 등이 모두 이런 주장과 같은 맥락에 있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와 비슷한 이런 논쟁은 '님비' 프레임을 만들어내곤 한다. 거기에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저항은 '공공이익'에 반하는 것이고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숨겨져 있다.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재산권 보장을 요구하며 대규모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시민 당사자의 저항이 '님비현상'으로 규정되면 갈등은 선과 악의 대결처럼 변질된다.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을 주장하는 것인데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나아가 불의한 사람들로 취급받는 지역 주민들은 분노하고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의 갈등은 본격적인 대결과 악화의 길을 걷게 된다.
재산권 & 공공이익공공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생긴다. 특히 민주주의가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자주 개인의 재산권과 공공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장애인시설, 노인복지시설, 쓰레기소각장 건설 등에 지역 주민들이 땅값과 집값 하락을 우려해 저항하는 일이 생기고 그것은 공공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대규모 국책사업인 원전이나 방폐장 건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사드배치 등에 대한 저항은 논의의 여지가 많지만 불가피하게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심각한 수준에서 공공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저항은 명백하게 공공이익에 반하든, 아니면 논의의 여지가 있든 모두 개인의 권리, 특별히 재산권 보장 문제와 관련돼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공공이익에 반한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자기 재산을 지키는, 그리고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타당한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공공이익을 위해 개인이익은 조금 희생될 수도 있다고, 또는 희생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정책에 일일이 딴지를 걸거나 저항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는 개인의 재산권과 전체 사회를 위한 공공이익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공공기관은 현실적인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때로 불가피하게 시민 당사자와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그 갈등을 전개하고 해결하는 기본 방향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돼야 한다. 그것이 공공기관에게 주어진 임무고 책임이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결국 모든 당사자들이 모여 앉아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고 합의하는 자리를 만들고 진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공갈등해결의 기본적인 가치와 원칙이 된다.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 재산이 침해받는 것, 다시 말해 땅값과 집값이 하락하고 매매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이 설사 이기적인 욕심으로 재산권 보장을 주장할지라도 그것을 부당한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공공이익, 즉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재산권을 포기하거나 손해를 감수하라는 설득은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오히려 당사자의 화를 부르고 강한 저항만 야기할 뿐이다. 다시 말해 공공갈등의 발생과 악화를 야기한다. 결국 공공갈등에 잘 대응하고 갈등을 잘 해결하는 방법은 개인의 재산권과 공공이익을 대결적으로 보지 않고 공존의 가치로 보는 생각의 전환이다. 나아가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하는 원칙 위에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평화갈등 이야기 > 갈등해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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