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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갈등해결 연재 4 공공기관 vs. 시민 힘의 차이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11. 28. 15:38
공공기관의 힘
공공정책이나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공갈등의 중심 당사자는 해당 정책이나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공공기관(공기업 포함)들이다. 이들은 보통 다른 당사자들, 그러니까 해당 정책이나 사업에 영향을 받는 지역주민이나 이익집단보다 한층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힘의 핵심적인 원천은 합법성과 결정권이다. 공공기관은 모두 법적으로 '하자'없는 절차에 따라 정책과 사업을 진행하고 어떤 문제 제기나 저항이 있더라도 최종적으로 정책이나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갈등은 발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공기관이 합법성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의 정당한 행사 여부에 대한 평가는 시민 당사자, 그리고 여론과 언론을 포함한 전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곧 정당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면 공공갈등이 생긴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합법성과 결정권은 공공기관이 가진 큰 힘이지만 공공갈등을 억제할 만큼의 절대적 힘이 되지는 못한다.
공공기관이 가진 또 다른 힘은 정보, 경험, 인적 자원 등이다. 공공기관마다 특화된 영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간의 어느 조직이나 집단보다 해당 영역과 관련된 방대한 정보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인적 자원 또한 양과 질에 있어서 거의 최고 수준이다. 그러므로 공공갈등이 생기면 공공기관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인 정보, 경험, 인적 자원을 내세워 자신이 최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힘 또한 공공갈등을 억제할 만큼 절대적 힘이 되지 못한다. 모든 갈등은 큰 틀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정보, 경험, 인적 자원은 그런 갈등의 특징을 이해하고 대응하는데 취약하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가 없으면 그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공공갈등이 생겼을 때 시민 당사자들이 상대인 공공기관을 불신하게 되면 아무리 객관적인 정보와 경험, 최고의 전문가를 내세워도 설득할 수가 없다. 이렇듯 공공갈등은 공공기관이 가진 전통적인 힘을 해체시키는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시민 당사자의 힘
공공갈등에는 다양한 시민 당사자들이 등장한다. 평범한 시민인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특정 공공정책이나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갈등 당사자가 된다. 이들이 가진 힘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크지 않다. 공공기관이 큰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만한 수준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 당사자의 힘은 특정 시점에서 보여지는 것으로만 판단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그들의 힘은 갈등의 전개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힘으로 진화하고 강화되는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시민 당사자의 가장 큰 힘은 그들이 '시민'이라는 데서 나온다. 비록 정책이나 사업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합법성과 결정권은 없지만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시민은, 특별히 직접 영향을 받는 시민은 문제 제기를 통해 정책이나 사업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도전할 수 있고, 결정권을 철회시키지는 못하지만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는 있다. 갈등 사안에 따라서는 전체 사회를 설득해 여론과 언론의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다. 이런 힘은 공공기관이 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서 얻어진다. 그런 의무와 책임 없이 공공기관의 존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시민 당사자는 이 점을 상기시키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힘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이런 문제 제기는 결국 공공기관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다른 정책과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계속 자기 일을 해야 하는 공공기관은 이런 지적과 문제 제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시민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자신만의 정체성이다. 그것은 때로 모든 것을 투자하게 만들고 모든 이익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체성은 곧 존재의 이유가 되기 때문에 시민들은 특정 공공정책이나 사업 때문에 부모로서의 정체성, 농민으로서의 정체성, 사회적 약자로서의 정체성, 특정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등이 훼손된다고 생각하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고 눈앞의 이익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힘은 시간이 갈수록, 그리고 상대가 힘을 사용할수록 더 강화되고 지속된다. 공공기관의 힘은 비교적 고정적이고 가시적이지만 시민 당사자의 힘은 흔히 유동적이고 비가시적이어서 오히려 큰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공공갈등의 핵심 당사자인 공공기관이 어떤 대응 방식과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잠재성은 힘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발휘되기도 하고 또는 대화와 협상을 위한 준비 동력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공공갈등과 힘의 문제는 세밀하고 분석적인 접근으로 해석돼야 한다. 무엇보다 공공갈등은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 힘의 불균형이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공갈등의 존재는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취돼 있음을 말해준다. 공공갈등의 존재 자체가 힘의 불균형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님을 말해주기 때문에 공공기관은 합법성과 결정권이라는 전통적인 힘으로 시민의 문제 제기를 봉합하거나 일방적으로 종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다. 자신이 시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하고 시민 당사자와 한 자리에 앉아 대화를 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동시에 바람직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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