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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갈등해결 연재 3 가치의 충돌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11. 7. 14:38
가치는 접어둬?
공공갈등의 당사자들은 크게 두 개 그룹으로 나뉜다. 하나는 공공기관 및 공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이다. 시민 그룹에는 갈등을 야기한 정책, 사업, 시설 건설 등에 직접 영향을 받는 지역주민들과 그것에 의견을 제시하고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포함된다. 두 개 그룹 사이에는 큰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추구하는 이익도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행동의 기반이 되는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공갈등과 가치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이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가치는 복잡한 문제기 때문에 되도록 공공갈등에서는 다루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는 시민단체나 풀뿌리 사회운동 단체에 해당되는 얘기고 지역주민과 공공기관 및 공기업은 가치와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은 가치중립적이고 단지 정책과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정책과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느냐가 바로 가치와 연결돼 있다. 그 가치는 때로 정부 및 여당의 가치와 맥을 같이 하기도 하고, 안전 우선인지 이익 우선인지, 또는 개인의 권리 우선인지 공공의 편의 우선인지의 가치를 반영하기도 한다. 지역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일상의 문제와 관련해서만 공공갈등에 대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응 여부 자체가 중요한 삶의 가치와 연결돼 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땅, 고향, 주변환경, 자녀의 미래 등이 모두 농부의 정체성, 고향산천에 대한 애착과 밀착감, 가족과 자녀의 미래를 중시하는 삶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가치다. 이에 비하면 시민단체의 가치는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쉽다.
공공갈등해결에서 가치의 문제를 다루다보면 갈등을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예 거론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가치를 외면하면 당사자를 이해하기 힘들고 결국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지역주민들의 농부로서의 정체성이나 고향과 가족을 중심에 둔 삶의 가치, 그리고 타협할 수 없는 시민단체의 가치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사람들이 보상을 거부하고 손해보는 저항을 택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갈등의 해결을 위한 접촉과 대화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치는 접어둬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펼쳐 놓고 분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단기적 대응과 장기적 비전의 충돌
더 복잡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갈등 현안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더 중요한 근본적인 가치의 충돌이다. 그것은 바로 시민의 권리,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역할, 공공의 이익, 민주주의, 민주사회의 미래 등에 대한 것이다. 이것들은 시민 당사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지만 대부분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갈등의 발생, 전개, 해결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시민 당사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런 가치를 갈등 현안과 상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외면하거나 쉽게 지나쳐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런 가치는 지역주민이나 시민단체가 큰 부담을 안고 저항하고 갈등을 전개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면 이렇다. 시민들은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민주주의 사회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민주사회에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일방적으로 정책과 사업을 결정하고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지 묻는다. 또한 시민을 위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오히려 시민에게 일방적 결정을 강제로 부과하려 하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공공의 이익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민주사회인데 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고 얘기하는지,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특별히 왜 민주사회에서 '공공'사업이나 시설 때문에 개인의 재산권이 침해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더 근본적으로 개인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것인지, 그런 상황에서 민주사회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한다.
이 모든 생각들이 공공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시민 저항의 근저에 있다. 그리고 이 생각들은 갈등을 계기로 시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사회로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눈 앞의 갈등과 자신들의 힘든 싸움이 장기적으로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저항과 갈등 지속의 의미를 찾고 그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것이다. 시민 당사자들의 이런 의미와 가치 부여는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갈등에서 더 두드러진다. 때문에 시민들은 사회의 큰 그림과 미래를 보지 않고 갈등 현안에만 초점을 맞추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근시안적인 갈등 대응에 문제를 제기한다. 한 푼이라도 더 보상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미래나 사회 변화까지 생각할 리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설사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것은 그저 여론이나 언론을 설득하기 위한 겉치레일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갈등 대응과 협상을 보상의 문제로 한정짓고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다루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에 가깝다. 현실적 문제와 관련해서도 사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한시적 안전과 보상이 아니라 20년, 30년, 아니 100년 후에도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무한책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미래와 사회 변화의 가치와 통하는 것이다.
공공갈등의 전개와 해결에 있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은 가치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다고, 그렇지만 그것을 끄집어 내면 오히려 갈등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는 정책, 사업, 시설 건설 같은 것은 가치중립적인데 그것을 가치와 연결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결정과 실행 과정에 이미 가치가 내재돼 있고 시민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미 존재하고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를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공공갈등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이런 가치의 존재와 근본적 차이를 인정하지도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는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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