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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갈등해결 연재 2 다수의 당사자평화갈등 이야기 /갈등해결 2016. 10. 4. 09:14
목소리 큰 놈만 찾아라?
이론적으로는 갈등이 기회지만 제대로 대응하고 해결할 역량이 없는 사회와 기관에게 공공갈등은 없는 것이 백번 낫다. 잘못 대응하면 그 부정적 영향이 공간적인 면에서는 전 사회, 그리고 시간적인 면에서는 몇 세대 후에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역량이 없는 사회, 공동체, 기관에게 공공갈등은 기회가 아니라 재앙이 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공공갈등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역량 여부에 상관 없이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공공갈등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공공갈등이 줄어들고 거의 생기지 않을 때까지 쭉~ 말이다. 역량을 키우는 단계 중 첫 번째는 공공갈등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다.
공공갈등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 현안의 덩치가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관련되는 당사자도 많고 세부 현안도 당연히 여러가지라는 것이다. 마치 고구마 줄기 하나를 집어 들면 숨어 있던 다른 줄기들이 줄줄이 달려 올라오는 식이다. 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땅 속에도 많은 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중 일부는 먹을 수 있고 몸에도 좋은 고구마지만 말이다. 공공갈등에 대응하는 정부나 공공기관 실무자들이 이 기본적인 특징을 외면하면 두 가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하나는 목소리가 크거나 눈에 보이는 당사자들에게만 대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고서에 올리기 좋게 드러난 당사자들과 그들의 요구만 골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다른 당사자들이나 그들의 현안은 지엽적이거나 무시해도 별 문제 없는 것으로 취급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정부나 공공기관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얻기 위해 자기가 핵심 당사자임을 강조하려 한다.
물론 갈등을 굳이 확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있는 당사자와 현안을 목소리가 크지 않고 저항이 약하다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보자. 정부는 성주의 저항과 요구에만 집중했고 대부분의 성주 사람들도 자기 이익과 자신이 핵심 당사자임을 부각시켰다. 정부는 성주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행정구역상 성주 안에 있지만 저항이 적은 새 배치지를 선정했다. 새 배치지를 반대하는 성주 내 다른 목소리도 무시했다. 그런데 이제 사드배치와 관련한 갈등을 좌우하고 유지하는 당사자, 즉 갈등의 주요 당사자는 성주 옆에 사는 김천 사람들이 됐다. 새 배치지가 거론될 때부터 조금씩 목소리를 내면서 주요 당사자가 될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정부는 무시했다.
단순화의 유혹을 이겨내라
당사자와 관련한 공공갈등의 또 다른 특징은 언제든지 새로운 당사자와 현안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갈등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와 시간대가 넓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 중 하나다. 댐 건설 계획은 보통 수몰예정지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하지만 동시에 댐에서 비교적 떨어진 상류지역 농민들의 반발도 불러올 수 있다. 댐 운영 시 안개 생성과 일조량 감소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지만 댐 건설로 인해 홍수 위험 저하를 기대하는 댐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 주민들 또한 새로운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들은 댐 건설 계획이 철회되면 크게 저항할 것이다. 최근 사드배치와 관련해서는 김천 사람들과 함께 성지를 지키려는 원불교 신자들이 주요 당사자로 떠올랐다. 하나는 생존, 다른 하나는 종교적 신념 및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향후 이 두 당사자가 사드배치 갈등의 전개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정부와 국방부가 성주 안의 문제라도 주장해도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집단이 있으면 갈등은 그냥 진행되는 것이고 무시할 수 없다.
공공갈등이 아무리 복잡하고 영향의 범위와 시간대가 넓어도 갈등에 대응하고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스스로, 또는 전체 조직이나 결정권자 차원에서 되도록 문제를 단순화시키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목소리 큰 놈만 찾는 것이 쉽고, 문제를 확장하기보다 좁히는 것이 해결을 용이하게 하고, 주요 당사자와 현안에만 집중하는 접근을 취해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 곁가지를 쳐내고 되도록 빨리 효과적으로 정책이나 사업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통 공공갈등에 관여된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이익과 저항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설사 입장을 관철시킬 수 없고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없다 할지라도 자기 입장과 요구를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떳떳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갈등을 단순화시켜 눈에 보이는 당사자들 사이의 갈등만 종결하면 다른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는 또 다른 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공공갈등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다수의 당사자와 현안이 등장할 수 있고 그것이 절대 부자연스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이해에 근거해 정부나 공공기관, 시민단체, 시민 모두 갈등을 단순화시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가, 그리고 어떤 문제가 언제 어디서 새로 등장할지 모르니 아예 처음부터 360도 안테나를 회전시켜 큰 그림을 상세히 파악하고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수용하고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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