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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구조의 변화로?평화갈등 이야기 /평화 2016. 10. 31. 12:04
나라 꼴이 우습다
희대의 정치 사기극을 보는 사람들의 감정은 복잡하다. 분노, 실망감, 자괴감, 절망감, 심란함 등이 모두 섞여 있다. 그중 가장 대세가 분노인 것 같다. '이게 나라냐'가 손 팻말의 문구로 등장했고 뉴스의 댓글에는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지난 주말 '박근혜 퇴진'과 '최순실 체포'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간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실시간 영상으로 지켜보며 응원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역시 분노가 있다. 그 분노가 향하는 곳의 첫 번째는 물론 대통령이과 최순실이고, 두 번째는 적극 공모하고 협력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정치권 전부다. 물론 그 중에서도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크다. 그렇다고 야당에 대한 분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공동 대응을 해야하니 대충 봐주고 있지만 원칙상, 그리고 이론상 정치와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책임을 야당들에게도 돌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국가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 나라를 세우고 지금까지 유지해 오면서 파란만장한 일을 겪었고 그 모든 과정에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현 상황에 분노하고 나아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사회가 강한 집단주의 문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가에 강하게 밀착돼 있고 공동운명체라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지금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삶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 이 나라에서 벌어진 것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에 대해 수치심까지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분노로 폭발하고 있다. 우리와 다른 역사와 문화적 성향을 가진 나라에서는 이런 일에 국민들이 조금 다르게, 다시 말해 국가사와 개인사를 분리시키고 그래서 분노와 자괴감이 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나라 꼴이 우습게 된 것에 대해 전 국민이 심한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고 그것이 각자의 생활과 일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현재의 상황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개인적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다면적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구조의 변화는 어렵다
분노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 구조의 변화다. 정치는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 하향식(top-down) 접근을 때려치우고 국민의 선출에 기초한만큼 국민의 필요와 요구를 수용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을 취하기를 사람들은 바란다. 사회는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봉사하지 않고 공정함과 공평함이라는 사회정의의 원칙을 지키기를 바란다. 사실 이것은 큰 요구나 소망이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당연하게, 그리고 가장 기본적으로 충족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너무나 자주 쉽게 내팽개쳐지고 있고 나라 꼴이 우습게 된 현 상황도 그것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렇다면 지금 표출되고 있는 사람들의 분노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글쎄요....'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 사회 구조가 가지고 있는 견고함 때문이다. 구조는 애초 사회 구성원들이 만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적응과 생존을 위한 장치들을 만든다. 마치 지능 로봇처럼 말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은 그 구조를 절대시하고 변화를 경계, 또는 거부하게 된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해볼 수 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구조를 적극 활용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고 확대시키기 위해 현재의 잘못된 구조를 유지하려고 한다.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현재처럼 변화의 요구가 나올 때 그들이 선제적으로 구조를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제한적이고 교묘하게 비튼 방식의 변화다. 다른 한 부류는 구조의 변화가 사회 불안을 가져올까봐 우려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섣부른 변화의 시도로 정치적, 사회적 불안과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야기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변화를 거부한다.
현재의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국민과 정치권이 얼마나 동력을 유지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분노와 자괴감으로 모두가 한 마음인 것 같지만 구체적인 변화의 시도가 시작되면 각자 자기 이익을 쫓아 다양한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또한 시간이 좀 흐르면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예전 일상으로의 복귀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일주일 동안 뉴스에 쏠렸던 관심은 희석되고 정당들은 더 이상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각자 제 갈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아마도 우리일 것이다. 일주일이 지났다. 한 달이 아니다. 정말 변화를 원한다면 인내가 필요하다.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힘들이지 않고 변화를 이룰 수는 없다. 이제 각자 자신의 수준에 맞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비전을 만들고 인내를 키워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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